[최승훈 소장의 세상사는 이야기] 한비자 사상으로 본 한국 사회의 해법
[최승훈 소장의 세상사는 이야기] 한비자 사상으로 본 한국 사회의 해법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4.11.21 06: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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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훈
•한국능률협회 전문위원
•연세대학교 외래교수
•한국생애설계포럼 대표

어지러운 세상에서 한 인물이 나라를 살릴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난세(亂世)일수록 사람들은 영웅호걸이 출현해 모든 위기를 해결해 주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굴뚝같다. 그것이 어렵게 느껴지면 역사적 인물 중에서 흠모하는 인물을 찾기도 한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말기의 사상가 한비자를 이 땅의 '해결사'로 불러온다면 지혜로운 해법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를 초빙하여 혼란스럽고 어지러운 '한국 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전략으로 삼으면 좋을 것 같다.

             <이미지 : 다음>

한비자는 제(齊)나라의 ‘관중’과 진(秦)나라의 ‘상앙’에서 비롯된 법가(法家) 사상의 완성자로, 엄격한 신상필벌(信賞必罰)을 국가 운영 전략으로 제시한 현실주의자이다. 인의(仁義)에 바탕을 둔 덕치(德治)가 모토인 공자와는 정반대의 사상이라 할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 만인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엄격한 법과 제도의 정비를 통해 사회의 '모순'(矛盾: 창과 방패라는 뜻으로 한비자에 나옴)을 바로잡을 필요가 강하게 요구된다.

상과 벌, 즉 인센티브야말로 적절히 동원할 만한 당근과 채찍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해결 기미가 잘 안 보이는 의사들의 의업 사태에 대해서는 한비자 비내(備內) 편에 나오는 '의사와 관 짜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의사가 남의 상처를 빨고 남의 나쁜 피를 머금는 것은 골육의 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이익이 더해지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의사들의 이익을 해하지 않은 범위 내에서 제도의 보완이 선행돼야 함을 의미하고 있다.

공자 시대의 인의 사상 대신 한비자 사상으로 풀어나간다면 묘책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인정과 너그러움으로 봐주던 관습을 버리고, 대신 각자 자기 일에 책임지는 풍토를 뿌리내려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고비용 저효율을 극복하고, 부정부패를 추방하고, 지속적인 사회 성장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각자에게 상과 벌이 올바로 주어져야 한다. 그렇게 되도록 법과 제도를 올바로 바꾸고 정비하여 집행하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변화 혁신의 과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비자는 한(韓)나라의 공자(公子)로 태어나 진나라에서 생을 마감했다. 한비자의 일생을 살펴보면 그는 권력을 잡았던 적도 없고, 찬란한 정치적 업적을 남긴 것도 없으며 오히려 굴욕적으로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그는 10여 만 자에 달하는 국가 통치의 이론과 사상, 통치를 위한 전략을 후세에 남겼다. 그의 이론과 사상 그리고 리더십은 사람들에게 번쩍이는 섬광이었고, 땅을 울리는 듯한 굉음 같은 것이었음이 분명해 보인다. 그의 사상과 전략이 응축돼 있는 『한비자』는 제왕들의 필독서로 받들어지게 되었다.

『한비자』는 진(秦)나라의 진시황이 읽고 감동하여 그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게 되었다. 진시황은 한비의 이론을 철저하게 적용하려 했다. 한비자가 주장했던 법치 사상은 진시황에게 스며들어 결국 통일된 진 왕조의 수립을 가능하게 하였고, 중국 최초의 통일 왕조 건설이라는 불후의 패업을 완성하도록 하였다고 할 수 있다.

한비자는 저술을 통해 역사에 길이 남을 불후의 업적을 남긴 것이다. 그의 저서 『한비자』에는 춘추시대 이래의 법가 사상이 매우 정교하게 통합되고 창조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비자』는 한 시대의 사상 흐름에 이정표가 될 수 있는 법가 사상이 집대성된 대단한 작품임에 틀림이 없다. 그의 저작 속에서 한비자는 천재적인 사상의 날개를 펼쳤으며, 제왕의 책무에 대해 경계하며, 제왕이 꼭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 명확하게 제시하였다.

한비자는 “법은 무엇보다 귀하며, 공평함을 잃어서는 안 된다.”라고 하면서, 법을 엄격히 적용하면 학식이 있는 자는 당당히 자신의 주장을 펼 것이요, 용감한 자는 다툼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징벌은 공평하고 엄격하게 해야 하며 포상 역시 공정하게 하여 공적이 없는 자는 포상을 받을 수 없게 해야 한다고 하였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혼란스러운 것은 법과 원칙이 너무 느슨하게 집행되어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법대로 하자면서 법을 거스르는 행동을 스스럼없이 자행하는 집단과 무리(fandom)가 이에 동조하여 관련 단체가 사회 질서를 붕괴시키려 하는 작태를 일삼고 있어 대단히 충격적이다.

물론 사회와 조직 속에서는 수많은 관계와 갈등이 존재하게 마련이다. 지도자와 구성원의 관계, 개인과 조직의 관계, 사람과 사물의 관계, 사물과 사물의 관계 등 무수한 관계가 존재한다. 뿐만 아니라 많은 다른 조직과의 관계, 그리고 외부 환경과의 관계도 존재한다.

이런 관계의 해결은 바로 갈등과 분쟁의 조정인데, 이를 위해서는 일정한 행동의 규범이 절대로 필요하다. 이런 행동의 규범은 대부분 바람직한 조직문화와 지도자의 올바른 리더십이 발휘되어야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비교적 큰 문제는 반드시 법과 원칙이 있어야만 해결할 수 있다. 국가에는 헌법과 각종 법률이 있고, 개별 조직에는 사규, 정관, 경영 방침, 매뉴얼, 실행 계획 등이 있다.

공자의 사상을 살펴보면 가족 윤리로 인의(仁義), 즉 자애로움과 사랑스러움으로 대표된다. 인의는 부부 화합(夫婦和合: 부부는 서로 화목하고 존중함), 부자자효(父子慈孝: 아비는 자식에게 자애롭고 자식은 부모에게 효성스러움), 형제 우애(兄弟友愛: 형제 사이에 우애가 있음)의 형태로 가족 간에 드러난다.

공자는 가족 윤리를 확장하여 사회 윤리의 근간으로 삼고자 했으며, 곧 인애(仁愛)의 원리로 사회가 도덕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고 믿었는데 실상에서는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끊임없는 갈등과 불신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한비자 사상으로 설명하면 대체로 엄한 가정에는 흉악한 자식이 없고, 인자한 어머니 밑에 못된 자식이 나오는 것이 사실이다. 이를 미루어 본다면 위세로 난폭한 것을 다스릴 수 있으나 후덕한 온정(溫情)으로는 혼란을 막을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성인들은 나라를 다스릴 때 백성들이 감화받아 선행을 행하기를 기대하지 않고, 법률로써 악행을 저지르지 못하게 하는 것이 현실적이었다. 감화되어 선행을 행한 자는 온 나라를 통틀어도 그 수가 얼마 되지 않지만, 법률로 악행을 금하면 온 나라가 평안해지게 된다.

조직을 경영하는 지도자는 많은 구성원을 상대로 하고 개개인을 상대로 하지 않기 때문에 온정 중심으로 경영하기보다 법과 원칙으로 운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곧은 화살을 만드는 데 저절로 곧은 나무를 찾는다면 백 년이 걸려도 화살 하나를 만들지 못할 것이며, 수레바퀴를 만들려고 저절로 둥근 나무를 찾는다면 천 년이 걸려도 수레바퀴는 만들어질 수 없다.

저절로 된 곧은 화살과 저절로 된 둥근 수레바퀴에 쓰일 나무는 백 년, 천 년에도 하나가 없을 것인데, 그러함에도 이 세상에는 언제나 수레를 타고 활로 새를 잡으니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은괄(隱括: 나무를 굽히거나 바르게 다듬는 기구를 써서 만듦)의 법”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은괄의 법에 의하지 않고 저절로 곧게 자란 대나무 화살 감이나, 자연적으로 자란 둥근 나무가 비록 있다 하더라도 뛰어난 장인(匠人)은 그것을 귀히 여기지 않는다.

왜 그럴까? 수레를 타는 사람은 한 사람이 아니며, 쏘려는 화살은 하나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록 상벌을 바라지는 않으나 스스로 선량한 구성원을 명석한 지도자는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왜 그럴까? 조직에는 반드시 법과 원칙이 엄연히 존재해야 하고, 관리의 대상인 구성원은 한두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원칙과 법(法)으로 다스리는 지도자는 구성원의 우연한 선행을 바라지 않으며, 구성원으로 하여금 필연적으로 성과를 내도록 이끌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본래 권력에 복종하지만 의(義)를 품고 따르는 사람은 적은 것이 현실이다. 공자는 세상에 알려진 성인인데 행실을 닦고 도덕을 밝히기 위하여 나라 안팎을 주유천하 하였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그가 말하는 인(仁)을 기뻐하고 의(義)를 찬미하였는데, 실제로 그를 따르며 섬긴 제자는 70여 명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이것은 인의를 귀중하게 여기는 사람은 적고, 의를 행하기에는 너무나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상은 넓고도 컸지만, 이를 실천한 사람은 공자 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조선 시대를 떠받치는 사상이었던 유학(儒學)으로 가정에서의 윤리가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데에도 그대로 통할 것으로 믿었다. 즉 가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인의(仁義)가 사회에서도 충만하면 사회가 제대로 다스려질 것이라고 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론이고 바람일 뿐 실현 불가능한 일이었다. 조선 시대에도 많은 법률이 만들어졌으며 그 법으로 나라를 통치했음을 알 수 있다. 인의로 다스려질 수 있었다면 굳이 법이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정과 사회는 다르다. 가정은 가장 작은 집단이고 국가는 커다란 집단이다. 그러므로 가정에서 통용될 수 있는 윤리 기준과 국가에서 통용될 수 있는 윤리 기준은 엄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인의만으로 사회가 다스려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은 무리이다. 이는 마치 자신의 신체 치수에 걸맞게 옷을 입어야 멋이 살아나는 것과 같은데 만약 자신의 신체에 어울리지 않게 옷을 입는다면 불편하고 꼴 보기가 싫게 될 것이다.

한비자는 “저절로 곧은 화살대를 찾는다면 100년이 지나더라도 화살을 갖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에게 어떤 사상이나 사회적 행위들은 모두가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었으며 자신의 법치조차도 예외는 아니었다.

전국시대가 끝나가는 극도로 혼란한 사회에서 한비자는 사람들을 하나의 법규 아래 단단히 묶어 두는 것만이 사회의 질서를 바로잡는 것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도 공권력이 아주 강력하게 실행되어 거악을 뿌리 뽑고 안정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법이 무용지물이 된다면 그런 사회는 혼란과 파멸만 남을 뿐이다.

모두가 느끼는 오늘날의 혼란스러운 현실에서 국가의 공권력이 엄정하게 집행되어 원칙과 질서가 바로 잡히는 사회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우리 모두의 마음일 것이라 생각해 본다.

최승훈 
 •한국능률협회 전문위원
 •연세대학교 외래교수
 •사이에듀 평생교육원 교수
 •한국 생애설계연구소 소장 
 •한국 생애설계포럼 대표(경영지도사, 평생교육사, 생애설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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