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훈 소장의 세상사는 이야기] 노년의 꿈은 살아 있다
[최승훈 소장의 세상사는 이야기] 노년의 꿈은 살아 있다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4.09.12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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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훈
•한국능률협회 전문위원
•연세대학교 외래교수
•한국생애설계포럼 대표

'이 나이에 무슨 꿈이야, 개꿈이나 꿔라.' '내 꿈도 있을까?' 등 꿈에 무관심한 노인들이 의외로 많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운계 박충선" 시인의 '노년의 꿈'이라는 시가 있다.

"솟구쳐 오르지 못하고 
은빛 소리로 잦아드는 파도 
썰물로 해변을 떠나 
멀리 가버린 노인의 꿈 / (중략)

노인의 꿈은
자식의 꿈을 등에 지고 걸어갈 수밖에 
회색빛 병실에 눕지 않고 
이웃에게 빈손 들어 구걸하지 않고 
봇짐 속에 말씀을 등에 메고 
영과 육이 목마른 소외자들을 찾아 나서, 
봇짐을 풀어 마주하며 
가보지 못한 천산 만수 넘고 건너
사람들이 땀과 눈물로 아롱진 천궁(天弓: 무지개)을 밟아 보고파
다가올 날보다 지난날의 긴 그림자 
하얗게 표백되어 가는 꿈의 관조여!" 꿈은
자식의 꿈을 등에 지고 걸어갈 수밖에 

꿈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꿈'이라는 말을 인생의 비전이나 목표 등과 같은 말로 사용한다. "꿈을 가져라", "네 꿈을 펼쳐라", "꿈은 이루어진다" 등이 그런 것이다. 꿈은 잠잘 때 꾸는 것인데, 어떻게 이런 용법으로 쓰이게 된 것일까?

어떤 사물이나 언어가 대중적으로 쓰이려면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꿈속에서 비전이나 신탁을 경험한 적이 없음에도 대중적인 용어로 자리 잡았다는 점은 쉽게 이해가 가지 않기도 하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꿈을 해석하려는 노력을 해왔다. 그러나 꿈은 마치 컴퓨터에서 열리지 않거나 열려도 무슨 뜻인지 모를 외계 문자나 기호 같은 것들이 나열되어 있는 문서 파일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코덱(CODEC)이 없거나 맞지 않으면 동영상도 재생되지 않고 해독되지 않듯이, 인간의 뇌 속에 코딩되어 있지 않은 꿈의 부호들을 해석하는 일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꿈 너머에 다른 세상이 있다고 믿어왔는지도 모른다.

장자(莊子)가 호접몽(胡蝶夢)에서 나비가 되어 하늘을 날아다니는 꿈을 꾸다 깨어난 후 ‘나는 원래 인간인데 나비의 꿈을 꾼 것인가, 아니면 원래는 내가 나비인데 지금 사람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했듯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애벌레가 사는 고치 속이고 고치 껍질을 벗고 나가면 나비가 날아다니는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집단 무의식이 꿈과 비전을 동일시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어떤 가수가 노래한 '어떤 이의 꿈'이라는 곡이 있다. '어떤 이는 꿈을 간직하거나 나눠 주고 살고, 어떤 사람은 꿈을 이루려고 살고, 또 잊은 채로 살기도 하고, 꿈이 없다는 사람도 있다. 세상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꿈이 있는데, 나는 꿈이 없으니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라는 내용이다. 

꿈을 가진 사람들 혹은 꿈을 운운하는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과 아무 꿈도 없는 자신을 향한 존재론적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마 모르긴 해도, 사람들 중에서 꿈이 없는 사람들이 노인들일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이제 선거에서도 유권자의 5분의 2가 될 정도로 노인들의 파워가 커져 그 힘을 쓰면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꿈이 없는 노인이 많아지는 것은, 노인 자신과 미래 세대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물론 새로운 꿈을 꾸고 도전하는 삶을 사는 노년도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은 다시 내일 같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면 그는 꿈이 없는 이가 분명한데, 놀랍게도 상당수의 노인들이 꿈에 관심이 없다고 고백하고 있다.

천지가 노인인 세상이 되었는데 사람들은 늘 그래왔듯이 노인을 지혜와 경륜으로 구분하지 않고 천덕꾸러기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노인의 나이를 행정적으로 구분하여 65세부터 그 시작이라고 하는데, 과거나 지금이나 노인들의 삶이 별로 달라지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직장과 사회에서 은퇴하고 지혜와 경험을 나누면서 젊은 세대들의 존경과 돌봄을 받으며 남은 생애를 살게 된다면 노년기의 남은 시간을 가치 있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노년기의 시작을 맥아더(Douglas MacArthur. 1880~1964) 장군은 78세에 "오래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늙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노쇠(老衰)해지는 이유는 자신의 꿈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얼굴에 주름살이 생기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꿈을 버린 자는 마음에 주름살이 생길 것이다."라고 썼다.

우리나라의 노인복지법에는 65세를 노년의 나이로 규정하고 있다. 곧 70세로 바뀔 것이라고 한다. 65세가 지나면 자신도 노인이라는 의식을 갖기 시작하고, 주변에서도 노인으로 취급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꿈을 가진 노인은 추하게 늙을 가능성이 적어지고 무기력한 노인이 되지도 않는다.

우리는 노인에 관한 많은 편견들을 가지고 있다. '노인이 되면 더 이상 쓸모없는 존재가 된다'거나 '그럭저럭 여생을 보내다 죽어야 하는 시기'라거나 '더 이상 배울 수 없는 시기'라고 말하는데, 이제 노년은 재발견되어야 한다. 

노년기의 도래는 실패한 것도 아니며 벌받은 것도 아니다. 누구나 늙게 마련이고, 늙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인간 성장의 한 과정이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이상하게 볼 것도 없고, 부담스럽게 받아들일 필요도 없다. 노년기는 또 하나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새로운 시기이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늙은이에게는 지혜가 있고 장수하는 자에게는 명철(明哲)이 있느니라." 늙었다는 것은 결코 죄가 아니다. 어떤 노인은 자신을 죄인처럼 생각하기도 한다고 한다. 

그러나 노년기를 결코 부정적으로 접근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만약 노인의 계절을 잘 활용할 수 있다면,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우리 세대와 다음 세대들을 위해 가장 크고 원숙한 공헌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노년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이 바뀌어야 한다. 노년기를 맞이하고 있는 시니어들이 자신부터 자신을 올바르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사회적으로도 노인에 대한 시각과 태도가 긍정적으로 달라져야 한다. 노년기를 맞이한 노인들을 위해 그들을 이해하고, 도움을 주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칼 융(Carl Jung. 1875~1961)'이나 '에릭슨(Erik Erikson, 1902~1994)'에 의하면, 인생의 후반기는 하향길이 아니라 새로운 인격의 통합을 이루는 절정의 시기라고 한다. 융에게 있어서 노년은 자기 자신의 내적 세계를 발견하는 기회이다. 이 내적 세계가 지금까지 자기가 오랫동안 예속되어 있던 외적 세계를 가치 있는 세계로 완성시키는 것이다. 

노년은 삶이 완숙되는 계절이라는 것을 인식할 일이다. 성경 말씀처럼 "늙은이에게는 지혜가 있고 장수하는 자에게는 명철이 있느니라"라는 말을 다시 한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또한 무의식 속에 방치해 두었던 무한한 노년의 가능성을 깨닫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되돌아봄으로써 자신을 반성할 수 있는 위치에 서는 시기가 노년기인 것이다. 

심리학적 입장에서 보면 노년의 아픔이 크기는 하겠지만, 아픔 속에서 새로운 기쁨을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 시기가 노년기인 것이다. 노년의 꿈은 살아 있어야 한다.

웨인 데니스(심리학자)는 "세계 역사상 최대 업적의 35%는 60대에 의하여 이루어졌고, 23%는 70대에 의해, 그리고 6%는 80대에 의하여 성취되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다.

노년기가 절망감과 실패감에서 끝나지 않으려면 꿈을 잊지 않고 행복을 만들어 내겠다는 의지가 있는 노인이 되어야 한다. 노년기의 변화를 수용해야 하고, 당당하게 홀로서기 연습을 해야 한다. 

그래서 창조적인 삶을 개발하고, 건강하고 아름다운 삶과 아름다운 엔딩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최승훈 
 •한국능률협회 전문위원
 •연세대학교 외래교수
 •사이에듀 평생교육원 교수
 •한국 생애설계연구소 소장 
 •한국 생애설계포럼 대표(경영지도사, 평생교육사, 생애설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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