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훈 소장의 세상사는 이야기] 무식하지만 믿음과 경청의 리더 ‘유방(劉邦)’
[최승훈 소장의 세상사는 이야기] 무식하지만 믿음과 경청의 리더 ‘유방(劉邦)’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4.10.24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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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훈
•한국능률협회 전문위원
•연세대학교 외래교수
•한국생애설계포럼 대표

항우가 3독(獨)과 3만(慢)에 젖어 나라를 잃었다면, 믿음과 경청의 리더십으로 군심과 민심을 얻어 한(漢)나라를 세운 유방(漢 太祖 高皇帝 劉邦, BC 247년~BC 195년)은 전한의 초대 황제(BC 202년 ~ BC 195년)로, 자는 계(季)이다.

패현(沛縣)의 정장(亭長; 면장급)으로 있다가 진나라에 맞서는 봉기에 가담한 후 진의 수도 함양(咸陽)을 함락시켰고, 한때는 관중(關中) 땅을 지배 아래 두었다. 

항우에 의해 기원전 206년 서부 한중(漢中)에 좌천되어 한왕(漢王)으로 봉해졌으나, 동진하여 기원전 202년 해하(垓下)에서 항우를 토벌하고 전한을 세웠다. 묘호는 태조(太祖), 시호는 고황제(高皇帝)이며, 고조(高祖)로 불린다. 고조는 군현제와 봉건제를 병용한 군국제를 실시하였다.

전쟁 중 추대된 ‘초회왕’은 전국의 제후들에게 선포했다. 진나라 수도 함양을 먼저 차지하는 자에게 함양을 비롯한 관중 땅을 주고 관중 왕으로 봉한다는 교지였다. 항우는 자신만만했다. 천하에 적수가 없다고 판단하고 함양을 향해 천천히 진군했다. 

그때 함양성에 먼저 입성한 제후가 등장했다. 바로 유방이었다. 항우는 크게 분노했다. 패현 땅에서 건달 짓이나 하던 유방이 자신의 앞길을 막자, 그는 유방을 죽이겠다고 결심했다. 

더구나 항우의 군사 ‘범증’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유방은 천한 출신이지만 천하의 주인이 될 관상입니다. 주군께서는 그 자를 죽이지 않으면 천하쟁패(天下爭霸)의 화근이 될 것입니다”라고 말해 항우의 유방에 대한 경계와 울분은 극에 달해 있었다.

항우는 홍문에 진영을 설치하고 유방을 불러들였다. 범증은 항장을 비롯한 장군들을 매복시켜 놓고 항우의 신호가 떨어지면 단숨에 유방을 죽일 계획이었다. 유방은 불과 100여 명의 시종들만 데리고 홍문에 도착해서 항우에게 고개를 숙였다.

“초왕이시여, 제가 함양에 먼저 들어온 것은 관중의 주인이 되려는 욕심 때문이 아니라, 제가 먼저 들어와 정리한 후에 초왕께서 당도할 때까지 잠시 맡은 것뿐입니다.” 유방은 비굴할 정도로 납작 엎드려 항우에게 사죄하고 고개를 숙였다. 

항우는 이 모습을 보고 “유방은 천하를 도모할 그릇이 아니라, 소인배이구나”라고 판단했다. 갑자기 그를 죽일 마음도 사라진 것이다. 하지만 범증은 계속 항우를 쳐다보고 어서 신호를 보내라고 재촉했다. 기분이 좋아진 항우는 범증을 아예 외면했다. 

범증은 항장을 불러들였다. 검무를 추다가 기회를 봐서 유방을 죽이라고 명령했다. 항장은 칼을 들고 서서히 유방에게 다가갔다. 이를 본 장량은 번쾌를 불러들여 항장을 대적하게 하였다. 두 사람의 살기 어린 칼이 부딪치며 연회장은 살벌한 기운으로 가득 찼다. 

번쾌는 항우에게 “어찌 부하에게 검무를 추게 하면서 감히 우리 주군의 목숨을 노리는가? 초왕은 천하에 대한 약속을 저버리려 하는가?”라고 소리를 질렀다. 

항우의 부하들이 일제히 칼을 뽑아 들려고 하자 항우는 “번쾌의 기개가 놀랍다. 사나이다운 호탕함과 대담함이 있다. 모두 칼을 거두어라. 그리고 번쾌는 내 술잔을 받으라”고 명령했다. 

그 틈에 유방은 장량 등과 함께 도망쳤다. 유방은 능굴능신(能屈能伸)의 처세로 목숨을 건졌다. 유방은 여러 사람의 책략을 잘 받아들였다. 많은 사람의 책략으로 유방 군대의 역량은 갈수록 증강되었다.

‘팽성 전투’에서 유방이 60만 명의 대군을 거느리고 항우와 일전을 벌렸다. 하지만 전투에 있어서 항우는 유방보다 한 수 위였다. 항우는 3만의 정예병으로 유방 군을 대파했다. 유방은 ‘형양’으로 도망갔다. 기원전 205년 항우와 유방은 형양에서 치열하게 맞섰다. 항우는 수많은 소규모 전투에서 승리했지만 끝내 유방을 잡지는 못했다.

형양에서 항우와 대처하며 위기에 빠졌던 유방은 항우에게 협상을 제안했다. 그리고 유방을 찾은 항우의 사신을 사사건건 푸대접했다. 유방의 책사 진평이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항우의 사신을 맞아 계속 ‘범증(항우의 핵심 참모)’의 안부만 물은 것이다. 

그러자 사신이 “나는 초패왕의 사신이다”라고 하자 상을 치우고 푸대접하며 사신을 자극했다. 몇 번에 걸친 이 같은 행동을 사신은 항우에게 알렸다. 항우는 의심의 함정에 빠져들었다. 

그는 “필시 범증이 한나라와 내통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지레짐작하여 범증을 내치고 말았다. 범증은 고향으로 낙향하면서 분통이 터져 그만 병을 얻어 죽고 말았다. 항우는 자신의 최고 핵심 참모를 진평의 계략에 잃은 것이다.

초한 전쟁처럼 긴 싸움에서는 한 개인의 경험, 지혜, 용기에만 의존하는 전략은 한계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 여러 가지 조건에서 항우에 비해 훨씬 불리했던 유방은 자기 능력에만 의지하지 않았다. 그는 여러 사람의 책략을 모으고 힘을 규합해 집단의 힘을 극대화하는 리더였다. 

이런 유방의 리더십을 '여러 사람의 책략과 여러 사람의 힘'이라는 뜻의 '군책군력(群策群力)'이란 말로 표현한다. 현대식으로 풀이하자면 '집단 리더십'이라 할 수 있을 ‘군책력’이라는 용어는 지금도 바람직한 리더십의 뜻으로 해석된다.

'경청(傾聽)'이 최고의 전략이었던 유방의 진가는 8년이 지나고서야 비로소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기원전 202년 해하(垓下)에서 벌어진 마지막 전투에서 항우는 유방의 참모가 만든 술책에 걸려들어 결국 패하고 말았다. 

유방에게 단 한 번의 패배도 허락하지 않았던 항우였지만 그의 첫 패배는 영원한 패배가 되고 말았다. 패현 출신의 동네 건달이었던 유방은 천하제일의 항우를 꺾고, 한나라의 왕, 한고조(漢高祖)로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경청'이 모든 것을 바꾸어 버린 것이다.

유방은 전략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자신의 측근들을 아꼈다. 물론 측근들이 가끔 유방에게 거칠고 듣기 거북한 충언을 해 유방이 격노한 적이 몇 번 있었지만, 그가 측근들에게 벌을 내리지 않고 항상 옆에 두고 신임해 주었다. 

유방의 속내는 “저렇게 대드는 것처럼 보이는 측근을 받아주는 넓은 아량을 보여야 부하의 충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의 예상대로 유방의 부하들은 배반하는 경우가 없었다. 유방을 배반하고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측근을 후하게 받아준 것도 다른 장군들의 신뢰를 얻기 위한 유방의 전략이었다.

항우가 칼을 들고 질타하면 천하에 두려움에 떨지 않는 사람이 없었지만, 그는 현명한 장군을 신뢰하고 일을 맡기지 못하는, 한낱 필부처럼 행동했다. 

반대로 유방은 많이 배우지도 못하여 무식하기는 했지만, 현명한 귀를 가지고 있었다. 참모들의 제안을 늘 경청하고 뜻을 모아 결정을 내렸다. 부하들이 그를 신뢰하게 만드는 인간미를 발휘한 것이다.

천하를 통일하고 ‘유방’이 연회를 베풀면서 신하들에게 물었다. “내가 항우를 이기고 천하를 얻을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인가?” 신하들이 대답했다. 

“폐하는 성과 땅을 함락시켜 얻으면 공이 있는 자에게 나눠줘 천하와 이익을 함께했습니다. 항우는 어질고 유능한 자를 시기해 공이 있는 자는 해치고 어진 자를 의심했습니다. 싸움에 이겨도 공을 돌릴 줄 모르고, 땅을 얻어도 이익을 나눌 줄 몰랐기 때문에 천하를 잃었습니다.” 그러자 유방이 말했다. 

“그대들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른다. 군막 안에서 계책을 세워 천리 밖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장량(張良)’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라를 안정시켜 백성을 위안하고 전방에 군수물자를 공급하는 일은 내가 ‘소하(蕭何)’만 못하다. 100만 대군을 통솔해 싸웠다 하면 반드시 승리하는 일은 내가 ‘한신(韓信)’만 못하다. 이 세 사람은 모두 천하의 인재이고, 나는 이들을 등용할 줄 알았다.” 

출신이 별 볼 일 없었던, 유방은 세 사람의 명신(名臣)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그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지혜가 있었다.

훨씬 불리했던 유방이 마침내 승리한 것은 자신의, 경험이나 실력에만 의존하지 않고 구성원의 다양한 전략을 통해 집단의 힘을 극대화한 덕분이었다. 

장기판 같은 ‘초한(楚漢)전쟁’에서의 승리는 소통을 위해 끝없이 노력한 자의 몫이라 할 수 있다. 

인생의 장기판에서 당신은 어떤 리더십을 발휘할 것인가?

최승훈 
 •한국능률협회 전문위원
 •연세대학교 외래교수
 •사이에듀 평생교육원 교수
 •한국 생애설계연구소 소장 
 •한국 생애설계포럼 대표(경영지도사, 평생교육사, 생애설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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