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동양EMS사장, 수필가
국제PEN한국본부 이사
한국인은 밀가루 재료의 중국식 춘장으로 만든 짜장면을 즐겨 먹는다. 그런데 새로운 조리법의 '된장 짜장면'과 ‘인절미 탕수육’이 새롭게 등장해서 사람들의 반응이 뜨겁다.
며칠 전에 <생방송 투데이>란 TV 방송 프로그램을 우연히 시청한 필자는 “된장으로 짜장면을 만들고 인절미로 탕수육을 조리하다니?” 거짓말 같았다. 하도 궁금해서 득달같이 서울 서초구 양재동 ‘미몽(美夢)’이란 중국음식점을 찾았다.

<된장 짜장면>과 <인절미 탕수육>이란 기발한 요리는 내게는 충격적이었다. 김성훈 미몽 중식당의 젊은 사장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고 번뜩이는 그의 발상(發想)에 감탄했다. 신메뉴를 개발하느라고 많은 시간이 들었고 실패를 밥 먹듯이 했단다.
된장 짜장면은 전통 한식 재료인 된장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짜장면이다. 잘 발효된 콩으로 만든 된장이 짜장면의 짜장 소스로 깊고 진한 맛을 더해준다.
‘독특한 미각(味覺)’은 ‘꿈속의 맛(味夢)’에 빠질 정도이어서 식당 이름으로 정했단다. 밀가루가 재료인 춘장(春醬)으로 만든 일반 짜장면은 다소 단맛이 강하다. 하지만 된장 짜장면은 된장의 깊은 구수한 풍미가 가해져서 감칠맛이 난다.
된장의 발효 과정에서 생성되는 유산균과 비타민이 함유되어 있어 건강에도 이롭지 싶다. 이처럼 맛과 건강을 동시에 잡을 수 있는 요리이기에 식당 앞에는 손님들로 장사진(長蛇陣)을 친다.
우리나라 콩이 재료인 전통 된장은 간장, 고추장과 함께 독특한 맛과 문화를 담는다. 새롭게 탄생한 된장 짜장면과 인절미 탕수육은 우리나라 전통 음식과 현대 음식의 조화가 잘 이루어진 식감을 느낀다.
그래서 짜장면과 탕수육에 관해서 구체적으로 조사해 보았다.
먼저 ‘자장면’이 맞을까? ‘짜장면’이 맞을까? 한국인의 91.8%가 ‘짜장면’이라고 말한다. 예전에는 국립국어원의 권고에 따라 책이나 뉴스에서는 ‘자장면’이라고 표기했다.
그러나 지금은 ‘자장면’과 ‘짜장면’ 둘 다 표준어이다. 그렇다면 짜장면이 어떻게 해서 한국인의 국민 음식이 되었을까?
중국 북부인 북경 인근의 가정집 요리, ‘작장면’이 한국으로 전래되어 한국 ‘자장면’의 효시이다. ‘작장면(炸醬麵)’을 글자대로 해석하면 ‘볶을 작(炸)은 불에 튀기다’, ‘장(醬)은 된장 등의 발효식품’을 말한다. ‘면(麵)은 밀가루 국수’를 뜻한다.
위 단어를 조합하면 ‘중국식 된장을 기름에 볶아 국수 위에 얹어 먹는 음식’이다. 짜장면의 특징을 그대로 풀어낸 정확한 작명이라 할 수 있다. 중국어로 ‘볶을 작(炸)’은 ‘짜’로 발음한다.
따라서 북경식 ‘짜장면’이라고 발음해야 중국어 원음에 가깝다는 게 조용연 중국문화 전문가의 주장이다. 그리고 중국 식당에서 Menu 판을 보면 대다수 요리 이름이 4글자로 쓰여 있다. Menu를 보면 음식 재료, 조리 형태와 조리 방법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막상 중국에는 짜장면이란 음식은 없다. 요즘에는 한국식 짜장면이 중국으로 넘어가 유행하고 있을 뿐이다.
중국 북부의 중국인들이 즐겨 먹는 작장면은 ‘중국 6대 국수(麵) 요리’에 꼽히는 전통 요리다. 한국식 짜장면처럼 젓가락으로 비벼 먹는 방법은 같다. 그러나 중국 작장면은 한국식 짜장면에 비해서 짜기만 하고 맛이 다르다.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대표이사로 일했던 이수강 사장이 북경 출장길에 작장면 맛을 보려고 중국 식당을 찾았는데 작장면이 소금처럼 짜서 도저히 먹을 수 없어서 젓가락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고 일러준다.
‘중국식 된장’인 ‘첨면장(甛麵醬)’은 일반 자장면에 들어가는 ‘춘장(春醬)’의 아버지다. 한국 짜장면에 들어가는 ‘춘장(春醬)’은 중국에는 없으며 오로지 첨면장(甛麵醬)만 있을 뿐이다.
첨면장은 콩인 대두를 주재료로 쓴다. 그러나 한국에서 최초로 개발된 춘장(春醬)은 대두가 들어가지 않고 밀가루가 들어간다. 이는 1950년대 미국의 무상 지원으로 한국에 들여온 미국산 밀가루 때문이다.
중국식 짜장면의 대표 격이라 할 수 있는 ‘베이징 짜장면’은 첨면장과 노란 콩으로 만든 황장을 같이 넣어 볶은 다음에 숙주나물, 오이, 무, 배추 등을 함께 넣어서 요리한다.
중국에 퍼져 나간 짜장면 중에서 한국 짜장면과 가장 유사한 맛을 내는 것은 산둥 지방에서 먹는 ‘산둥식 짜장면’이다. 밀가루와 소금으로 발효시킨 다음에 삶은 대두를 섞어 만든 첨면장(甛麵醬) 위주로 맛을 낸다.
문제는 입맛을 사로잡는 비밀이다. 원래 첨면장은 단맛이 잘 나지 않는다. 춘장은 짭짤하면서도 단맛이 배어 나온다.
1948년에 화교(華僑)인 ‘왕송산(王宋山)’ 씨가 첨면장에 캐러멜을 넣어서 ‘사자(獅子)표’란 상표로 한국식 첨면장을 개발했기 때문이다. 1950년 이후에는 밀가루를 주재료로 장을 만들면서 한국식 춘장이 탄생했다.
짜장면의 유래에는 여러 주장이 있다. 일단 한국 짜장면의 시초는 앞에서 언급한 중국의 산둥식 짜장면으로 보는 것이 맞다. 그렇다면 이 산둥식 짜장면은 어떻게 해서 한국에 왔을까? 바로 중국인들의 대량 유입과 함께 들어왔다.
1882년 청나라 함장인 오장경(吳長慶)이 군함 5척을 이끌고 조선에 와서 임오군란을 진압했다. 임오군란을 진압한 청나라 병사들은 자연스레 중국음식을 찾았고 이들을 대상으로 한 음식점이 문을 열었다.
1883년에 제물포항이 개항되었는데 산둥성의 중국인들이 제물포로 대거 몰려왔다. 이들이 즐겨 찾던 산둥성 음식도 한국으로 넘어온 것이다.

초창기에는 부두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퍼져나가던 산둥식 짜장면이 1905년에는 제물포에 있는 ‘공화춘(共和春)’이란 중국음식점에서 정식 메뉴로 새롭게 탄생했다.
화교인 우희광(于希光...1886~1949)씨가 설립한 공화춘은 일제강점기 때 고급 중국음식점의 대명사였다. 짜장면이 한국인들의 입맛을 파고들며 공화춘이 성공하자 화교들의 생존 수단으로 중화루, 동흥루 등 중국음식점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이렇게 해서 짜장면 맛은 한국인들에게 널리 퍼져나간 것이다.
그리고 1945년 해방과 동시에 짜장면은 완전한 대중화의 길을 걷게 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1950년대 초까지 이어지는 근현대사의 질곡 덕분이다.
광복과 함께 정부가 수립되면서 대한민국은 화교에 대한 재산권에 제한을 두게 된다. 그 때문에 화교들은 직업 선택의 자유를 제한받았다. 여기에 1949년 중국이 공산화가 된다. 그다음 해인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했다. 화교들은 한반도에서 고립되었다. 그들은 생존을 위해 중국집을 차릴 수밖에 없었다.
1948년에 332개였던 중국집이 1972년에는 2,454개로 늘어났다. 중국집에서 일하는 화교들 숫자도 급속히 증가했다. 1949년에는 중국음식점의 화교 노동자 비율이 40.3%였지만 1972년에는 77%였다.
당시 화교들이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생계 수단이 중국집 개업이었다. 그렇다면 중국음식점이 늘어났기 때문에 짜장면도 급속도로 퍼져나갔을까? 물론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일단 한국인의 입맛에 잘 맞았으며 시대 상황에 잘 부합되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1950년 6.25 전쟁 후 짜장면이 한국 사회에 자연스럽게 안착한 4가지 연유다.
첫째, 1950년대 미국을 통해 대량으로 들어온 밀가루 원조 때문이다. 이때쯤 첨면장에 대두를 빼고 밀가루로만 만든 춘장이 등장했기 때문에 재료 확보가 용이했다. 그리고 이런 밀가루를 배경으로 한 정부의 혼·분식 장려 정책이 맞아떨어졌다.
둘째, ‘빨리~!’를 외치는 한국인 입맛에 맞춘 ‘철가방’이라는 배달 시스템과 빨리 먹을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1960년대, 대한민국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변화의 시기를 맞는다. 1분 1초를 아끼던 시절에 짜장면은 빨리 배달시켜 먹을 수 있는 한국인의 국민 음식의 대표 주자였다.
셋째,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떠난 사람들에게 짜장면은 별식(別食)이었으며 외식(外食)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넷째, 분식(粉食)이란 한계가 있으나 짜장면은 열량이 높다. 성인 남자 기준으로 1일 칼로리 권장량은 2,500kcal인데 짜장면 한 그릇 열량은 약 700kcal 정도다. 이는 다른 음식과 비교하면 높은 열량이다. 비빔밥 한 그릇의 평균 열량은 550kcal이고 삼겹살 1인분(200g 기준)이 620kcal임을 감안하면 열량이 높음을 알 수 있다.
그 당시 한국 정부나 한국인은 값이 싸며 고열량인 맛있는 짜장면을 환영할 수밖에 없었다. 전국 24,000곳의 중국음식점에서 날마다 약 6,000,000그릇의 짜장면이 팔린다. 이렇게 해서 한국인에게 짜장면이 국민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짜장면에 얽힌 아버지와 아들 간에 실제 있었던 동상이몽(同床異夢) 아저씨 개그다.
짜장면을 즐겨 먹는 날이라는 ‘블랙 데이(4월 14일)’에 인천 차이나타운을 찾은 부자(父子)가 중국집(共和春)에서 짜장면을 시켜 먹으면서 부자가 나눈 재미있는 대화 내용이다.
아빠 : “아들아! 다음에 커서 뭐가 될래?”
아들 : “저는 다음에 커서 대통령이 될래요”
아빠 : “그럼 대통령이 되면 아버지에게 뭘 시켜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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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생각하던 아들이 기대에 찬 아버지에게 하는 말)
아들 : "탕수육(糖水肉)이요~!”
‘탕수육의 탕’자가 ‘갈비탕(湯), 설렁탕(湯), 대구탕(湯)’의 ‘끓을 탕(湯)’자가 아닌‘엿 당(糖)’, ‘사탕 탕(糖)’자를 쓴다.
‘탕수육(糖水肉)’의 ‘물 수(水)’자를 중국에서는 ‘식초 초(醋)’란 글자로 쓴다. 달달한 탕수육 맛보다는 새콤달콤한 ‘탕초육(糖醋肉)’의 중국어 발음은 ‘탕추러우’이다. 우리말로 처음 번역할 때 뜬금없는 번역의 오기(誤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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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동양EMS사장,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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