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길 CEO칼럼] 건빵, 설렁탕, 회(膾), 육회(肉膾), 냉면(冷麪), 밀면
[전대길 CEO칼럼] 건빵, 설렁탕, 회(膾), 육회(肉膾), 냉면(冷麪), 밀면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4.05.29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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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   길
(주)동양EMS 대표이사, 수필가 
국제PEN한국본부 이사

1868년 일본이 서구식 근대화를 추진했던 명치유신(明治維新) 후 일본군 전투식량을 주로 주먹밥과 찐쌀을 사용했다. 그러나 자칫하면 주먹밥이 상하기 때문에 빨리 먹어야만 했다. 

찐쌀을 물에 불리거나 입안에서 불려야 하니까 시간이 오래 걸렸다. 서양 군대를 보니 2회 구워서 말린 비스킷(Biscuit)이 전투식량임을 알고서 일본군이 모방해서 만든 게 바로 ‘건빵’이다. 

미국산 밀가루로 만든 전투식량용 비스킷은 7년이라는 장기 보관을 위해 맛을 포기하고 수분을 바짝 말렸다. 청일전쟁, 러일전쟁 때 전투식량으로 이러한 비스킷을 보급했다. 

그런데 맛이 없고 쉽게 부서지는 단점이 있어서 유럽산 밀가루에 쌀 등을 섞어 100g 정도의 비스킷을 만들었다. 맛을 보강하고 부서지지 않게 개선했는데 이게 바로 건빵의 유래다. 

 <건빵>
    <건빵>

그런데 1920년대 일본이 만주국을 침략하면서 추운 지역에서 당분을 확보하기 위해 비스킷에 작은 별(★)사탕을 넣었다. 그 후 별 사탕의 하얀색이 기온이 추운 지역에서 얼음을 먹는 느낌을 준다고 해서 여러 가지 색깔을 입혔다. 

세계 제2차 대전 직전엔 비스킷 크기를 한입에 먹기 좋게 작게 만들었던 게 지금의 건빵으로 진화(進化)했다.  

고려시대 몽골인은 쇠고기에 야생 파를 넣어 끓인 '슐렝(Schlang)'을 즐겨 먹었다. 이것이 우리나라에 전해져서 설렁탕이 된 것이다. 육회(肉膾)도 몽골의 영향으로 탄생한 음식이다. 

고려 말에 몽골 지배를 받으면서 쇠고기를 날로 먹는 육회 요리가 널리 퍼졌다. 각종 고기를 요리하는 기술이 발달한 몽골인은 고려인에게 고기 다루는 법을 전수했다. 

당시 불교(佛敎)를 박해하고 부상한 유교(儒敎)도 이런 현상을 부추겼다. 중국의 공자(孔子)가 육회나 생선회를 즐겨 먹었다고 알려지면서 조선의 사대부(士大夫)도 거리낌 없이 날고기인 회(膾)를 즐겨 먹었다고 한다.  

<부산 밀면>
                              <부산 밀면>

냉면(冷麪)은 원래 우리나라 북한지역의 요리다. 6·25전쟁 때 피난민들이 남쪽으로 내려와서 남한에서 널리 퍼졌다. 

부산 임시 수도(首都)에 온 실향민(失鄕民)들이 값이 비싸고 구하기 힘든 메밀 대신에 전시(戰時)에 한창 보급되던 밀가루로 면을 만든 게 바로 부산지역 향토음식(鄕土飮食)인 밀면(麵)이다. 

최근 강남 청담동에 미슐랭 1★ 파인 다이닝의 한·중·일 퓨전 식당이 들어섰다고 풍문에 들린다. 서울에서 유명한 S 호텔 주방장들이 ‘코자차(Kojacha)란 식당을 열었다. 

‘코리아(Korea)’의 ‘코(Ko)’, ‘Japan’의 ‘Ja’, ‘차이나(China)’의 ‘Cha’란 한·일·중 국명(國名)의 두음(頭音)을 따서 식당 이름을 지었단다. 

조만간 친구들과 청담동 ‘코자차(Kojacha) 식당’을 들려야겠다. 

       전   대   길
(주)동양EMS 대표이사, 수필가 
국제PEN한국본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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