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낳기 무서워요" 산모들 떨게한 페인버스터 금지...저출산 대책 380조원이 무색
[이슈] "낳기 무서워요" 산모들 떨게한 페인버스터 금지...저출산 대책 380조원이 무색
  • 이윤희 기자
  • 승인 2024.06.13 11: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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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 국가에 필요한 것, '출산할 결심']
제왕절개 통증 줄여주는 '국소마취제 페인버스터' 요양급여에서 제외 논란
비난 여론 빗발치자 한발 물러선 보건복지부, "산모와 의사 선택권 존중하겠다"
국민 공감 못받는 황당한 저출산 대책...전면 개선 요구 목소리 높아져
국민 공감을 얻지 못하는 저출산 정책이 다수 쏟아지면서 비판 여론이 커지고 있다. 저출산 문제 해소를 위해선 보다 실효성 있는 방향으로 개선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국민 공감을 얻지 못하는 저출산 정책이 다수 쏟아지면서 비판 여론이 커지고 있다. 저출산 문제 해소를 위해선 보다 실효성 있는 방향으로 개선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아웃소싱타임스 이윤희 기자] 며칠 전 황당한 소식 하나를 접했다. 산모들이 제왕절개 시 사용하는 페인버스터 마취제가 혼합진료금지에 따라 사실상 사용이 막혔다는 호소글이였다. 

당장 오는 8월 출산을 앞둔 필자의 지인인 산모에게 관련 사실을 물었으나 '처음 듣는 이야기'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출산을 두달 앞둔 산모도 제대로 몰랐던 소식은 단순 유언비어나 낭설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와같은 내용이 담인 '요양급여의 적용기준 및 방법에 관한 세부사항' 일부 개정을 통해 개흉, 개복술에 국소마취제 투여법의 급여 기준 변경이 추진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두고 보건복지부는 타당성을 충분히 입증한 결정이라고 설명했으나, 일부에서는 출산에 대한 두려움을 부추긴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앞서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요양급여의 적용기준 및 방법에 관한 세부사항‘ 개정안에 따르면 무통주사와 함께 사용되는 '페인버스터'의 마취제 사용이 7월 1일부터는 무통주사와 함께 쓸 수 없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겼다. 

개정안은 개흉·개복술 등 수술부위로의 지속적 국소마취제 투여를 제한한다고 밝히고 있다. 무통주사를 맞을 수 없는 경우 등을 제외하고는 국소 마취제인 '페인버스터' 투여가 불가능해진다. 예외적으로 요양급여로 인정되는 경우 본인 부담률도 80%에서 90%로 확대한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에서 2023년 11월에 시행한 의료기술 재평가 시 다른 통증조절방법(무통주사 등)을 단독으로 사용하는 경우와 수술부위로의 지속적 국소마취제(일명 ‘페인버스터’)를 다른 통증조절방법과 함께 사용하는 것을 비교하였을 때, 통증조절 정도의 차이가 없고 국소마취제도 6배 이상 투여하여야 하는 등 전신적인 독성 우려도 있다는 의견을 받았다는 것이 정부의 해설이다.

또한  다수의 전문가가 해당 시술법을 다른 통증조절 방법을 함께 사용하는 것은 의학적 근거가 부족하여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받아, 해당 항목에 건강보험이 활용되는 요양급여항목으로 설정하는 것이 옳지 못하다고 판단했다고 부연했다.

요양급여 적용기준 및 방법에관한 세부사항 일부개정에 담긴 국소마취제 투여법의 급여기준란 신설 내용
요양급여 적용기준 및 방법에관한 세부사항 일부개정에 담긴 국소마취제 투여법의 급여기준란 신설 내용

그렇다면 환자 본인이 비용 부담을 해서 페인버스터를 투여할 수 있을까? 답부터 내리자면 가능은 하나 기존보다 훨씬 더 높은 비용 부담이 예상된다. 

정부는 비급여 진료와 급여 진료를 함께 혼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혼합진료금지 정책을 세웠는데, 이에 따라 페인버스터가 요양급여 항목으로 인정받지 못하면 무통주사와 페인버스터 동시 투여 후 페인버스터만 비급여로 처리하는 것은 불법이 되는 셈이다. 

항간에서는 무통주사를 맞지 못한다는 거짓뉴스에 산모들이 우려했던 것은 출산 시 통증에 대한 두려움이었는데, 페인버스터가 사실상 금지되면서 '무통주사를 못 맞는다는 것은 가짜뉴스'라던 정부의 발표가 말장난이 되버렸다는 비난도 일삼는다.

이와같은 비난 여론에 대해 복지부는 해당 항목의 재평가는 필수의료 정책 발표 전인 지난해 8월에 진행된 건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기존 행정예고대로 국소마취제인 페인버스터가 요양급여에서 제외되면 정부의 의료정책에 따른 산모들의 피해는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페인버스터는 제왕절개를 한 산모 다수가 통증을 줄이기 위해 무통주사와 함께 투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출산 시 제왕절개 비중이 높은 국가 중 하나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한국의 제왕절개 비율은 1000명당 537.7명으로 회원국 중 두번째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제왕절개를 선호하는 비중이 높은데, 제왕절개 시술 시 필수 선택지로 여겨지고 있는 페인버스터의 요양급여 제외는 출산을 앞둔 산모들에겐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인 셈이다. 페인버스터의 효과에 대해서는 개인별 편차가 있으나 진통 효과를 크게 보았다며 도움을 받았다는 산모의 후기가 적지않다. 

당연히 산모들의 반발은 빗발친다. 기존에 있던 선택지를 구태여 줄여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출산한 부모를 대상으로 출산지원금, 육아지원금 등을 제공하는 저출산 정책을 내세우면서 출산 자체를 더 두렵게 만드는게 과연 옳은 것이냐는 비판도 나온다. 

특히 한국은 초혼 평균 연령이 늦춰지고 고령 출산이 많아지면서 선택적 제왕절개가 아닌 불가피한 제왕절개가 다수 발생하는데, 비용 부담으로 임신과 출산 자체를 꺼리게 되는 이들이 더 늘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비난 여론이 들끓자 보건복지부는 "행정 예고 시 제기된 산모와 의사들이 선택권을 존중해 줄 것을 요청하는 의견과 앞서 수렴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하여 해당 시술법의 급여기준 개정안을 확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발표에 따르면 산모들의 걱정은 당장은 덜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여전히 국소마취제가 급여항목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불안감, 정확하고 명료하지 않은 법안 설명을 두고 우왕좌왕하며 불안을 호소하는 산모, 예비산모가 적지 않다. 산모들이 주로 모인 맘카페나 커뮤니티에서는 여전히 불만을 제기하는 이들이 적지않다. 저출산·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출산 불안을 부추겨선 안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 국민 공감 얻을 수 있는 저출산 정책 나와야 
지난 18년간 정부가 저출산, 저출생 대응에 쏟아부은 비용은 380조원에 이른다. 2022년 중앙정보의 저출산 관련 예산만 52조에 달한다. 

그러나 최근 일부 정치권에서 제안된 '쪼이고 운동'이나 여아의 조기입학 등을 제안하는 보고서가 발간되는등 황당한 저출산 대책이 쏟아지는 동시에 이번 페인버스터 논란까지 잇따르면서 부정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정부가 출산 당사자인 산모, 육아부부와 청년 세대의 현실적 고충을 공감하지 못해 실효성 없는 대책에 정부 재원을 낭비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11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와 한국개발연구원이 공동으로 개최한 '저출생 예산 재구조화 필요성 및 개선 방향' 세미나에서 안수지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정책 목표와 사업 범위가 모호하다 보니 관련성이 낮은 사업들이 대책으로 포함되고 막대한 예산에도 불구하고 국민 체감도가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이와같은 의견에 대해 주형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은 “효과성이 없는 사업에 대해서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정책 사각지대 분야에 대해서는 보완책을 마련하는 동시에 실효성 있는 핵심과제 중심으로 재원을 집중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의 합계 출산율은 1분기 기준 0.76명으로 집계된다. 서울시로 한정하면 1분기 0.59명까지 떨어져 역대 최저치를 기록 중이다. 

막대한 비용을 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저출산 문제가 심화되는 데는 분명 재원이 엉뚱한 곳으로 세어나가고 있다는 증빙이다. 시대착오적 대안이나 과학적 근거가 없는 대책을 내세우기 보다는 산모와 예비 산모가 '출산할 결심'을 할 수 있는 사회 구성을 위한 정책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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