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절을 앞두면 뉴스에 나오는 단어가 있다. ‘명절 증후군’이다. 명절 때문에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아서 생기는 것으로 우리나라 고유의 문화에서 발생하는 일종의 문화 증후군(culture-bound syndrome)이다. 이것은 사회문화적으로 볼 때 명절에 모든 일의 부담이 여성에게만 전가되는 현실이 중요한 원인이 된다. 하지만 육체적인 고통보다 더 심한 것은 정신적인 고통이다.
대한민국 며느리의 99%가 시댁에 대한 감정노동을 느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아이 없이 남편 및 시부모와 사는 여성은 남편과 단둘이 사는 여성에 비해 심장마비가 나타날 확률이 3배나 높았다고 한다.
누구나 사는 문화와 가치관이 다른 상태로 남자와 여자가 만나 결혼하게 된다. 그런데도, 시댁의 감정노동은 ‘며느리는 무조건 시댁 문화를 따라야 한다.’고 강요하는 사회적 구조에서 비롯된다.
○ 윤 대리: 감정노동은 나의 감정과 다른 행동을 해야 하는 모든 상황에 적용될 수 있다고 하셨죠? 그렇다면, 일상생활에서 가장 격하게 나타날 수 있는 감정노동에 시월드를 빼놓을 수 없겠네요. 오죽하면 ‘사랑과 전쟁’ 드라마 수백 편의 대부분의 이야기에서 시댁이 빠지지 않겠습니까?
▣ 감정연구소: 하하! ‘사랑과 전쟁’은 시청률을 위해 약간의 과장이 포함되어 있기도 합니다. 내가 해야 하는 역할을 강요받는 상황에서는 감정노동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결혼하면 시댁 문화를 따라야 한다고 강요받는 문화였습니다. 급격한 경제발전으로 교육 수준이 올라갔고, 현 시대의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높은 학력 차이와 맞벌이 문화 등의 문화 차이가 세대를 더 갈라놓고 있습니다.
○ 윤 대리: 주변에 맞벌이하는 동료들이 많은데, 맞벌이의 경우 자녀 양육의 문제도 있어서 더 난감한 상황이 많은 듯합니다.
▣ 감정연구소: 심리학에서 생활사건으로 스트레스 지수를 측정하는 지표가 있습니다. 200점 이상일 경우 신체질병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고,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서 스트레스를 해소할 것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생활지표에서 유산한 경우의 스트레스 점수가 38점인데, 시댁·처가·친정과의 갈등이 있을 경우는 34점입니다. 가족의 병환이 36점인 것을 고려하면 상당히 높은 수준의 스트레스에 노출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겁니다.
○ 윤 대리: 아직 미혼인 저는 이해가 잘 안 되네요. 시대가 바뀌었는데, 왜 시댁 문화는 변하지 않는 거죠?
▣ 감정연구소: 시대가 많이 변했기 때문에 갈등이 더 심화되는 겁니다. 말 그대로 시집살이를 하고 살았던 세대가 지금의 시어머니 세대 아닙니까? 그때는 일찍 결혼해서 애 낳고 살면서 시부모님을 모시는 것이 의례적이었던 시대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일단 결혼 적령기가 10년 이상 늦춰졌습니다. 늦은 나이에 맞벌이하랴, 애 키우랴, 공부하랴, 힘든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재 며느리 세대입니다. 집에서 살림만 하던 시어머니가 나이 들어 일하면서 공부하면서 애 키우는 며느리의 심정을 알겠습니까?
○ 윤 대리: 어떻게 보면, 빠른 경제성장이 세대 간의 골을 더 깊게 만든 거나 다름없네요. 이렇게 다른 세대를 살았는데 말이 통하면 그게 더 이상한 거라고 볼 수도 있겠어요.
▣ 감정연구소: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 시댁과의 갈등에 의해 며느리와 시댁 사이가 더 멀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한 조사에서 기혼 직장인의 상당수가 본가 식구들보다 처가 식구들을 더 자주 만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처가 식구를 더 자주 만난다는 직장인이 40.2%, 시댁 식구들을 더 자주 만난다는 직장인이 30.3%로 약 10%의 차이를 보였습니다.
이뿐 아니라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고모보다 이모를 만나는 수가 더 많았다는 것 등, 최근 조사 자료에서는 시댁보다 처가와의 왕래가 더 잦은 것으로 조사되고 있습니다.
○ 윤 대리: 실제 시댁이 ‘사랑과 전쟁’ 드라마에서 보이는 수준이 아니라면, 대체 어느 정도이길래 시댁에 가는 것을 꺼리는 건가요?
▣ 감정연구소: 감정노동을 해소하며 만난 사례를 말씀드려보겠습니다. 강의를 들으러 오신 분은 이미 나이가 40대 중반이고 슬하에 딸이 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아들을 출산할 것을 강요하는 시아버지에 관한 사례입니다. 시아버지는 아들을 낳지 못할 경우 죽어서 조상을 볼 면목이 없으니 자식의 연을 끊자고 했고, 아들을 낳지 못한 자신 때문에 남편이 부모님과 사이가 좋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고 하셨죠.
○ 윤 대리: 이 사례도 ‘사랑과 전쟁’이네요.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나는군요. 요즘은 아들, 딸 구분하지 않는 것이 대세 아닌가요?
▣ 감정연구소: 며칠 전 TV에서 어떤 강사가 바나나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예전엔 바나나 하나를 구경하기가 힘들었는데, 지금은 내가 마음만 먹으면 방안 가득 바나나를 채울 수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고요. 즉, 사는 방식이나 받을 수 있는 혜택이 너무나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조금 전 윤 대리님의 말씀은 현재의 20~30대 사고입니다. 60~70대는 대가 끊어지면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 것으로 알며 살아온 세대죠.
○ 윤 대리: 그렇죠. 흔히, 고무신 세대부터 운동화 세대까지 겪은 세계 유일의 나라라고 하죠. 그러니 이런 세대차이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요? 방법이 있나요?
▣ 감정연구소: 무엇이든지 중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중간은 현명한 방법이 되어야겠죠. 이야기를 나누면서 현명한 방법을 찾아보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