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립 19주년, 본사 이전과 함께 제2도약 선언
콜센터·인재파견 기반 아웃소싱 영역 확대
건실한 재무구조, 서비스시스템 자타 공인
지난 7월 본사사무실을 확장, 이전한 이케이맨파워(대표 김동규, www.ekmanpower.co.kr)가 제2도약을 선언하고 본격적인 행보에 들어갔다.
제2도약의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EK Goals for 2015’를 통해 2015년까지 파견분야에서 1만명, 아웃소싱분야에서 1만명을 목표로 한다는 야심찬 계획도 발표했다.
올해로 창립19주년을 맞은 이케이맨파워는 통신, 금융, 유통, 공공기관 등 다양한 업종의 아웃소싱을 수행하고 있다. 특히 콜센터 아웃소싱 분야에서는 다년간의 경험을 통한 전문성을 확보하여 국내 리딩업체로서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
콜센터 부문의 경우 대한생명, KTF, KT고객센터, 외교통상부 영사콜센타 등 약 1,500명의 상담사를 보유하고 있으며, 올해 들어 국민건강보험공단 부산콜센터, 스카이라이프 고객센터를 추가로 계약하는 등 어려운 시장 환경 속에서도 서비스와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대표기업이다.
‘인재육성과 고용창출을 통한 사회기여’라는 경영이념으로 출발한 이케이맨파워는 19년간 다양한 아웃소싱 서비스 경험을 확보해 왔다.
이 회사의 강점은 먼저 특정지역에 편중되지 않은 전국적인 지사망과 관리운영 노하우를 가지고 있으며 관리자급 평균 재직 경력이 10~15년 정도의 전문인력으로 구성이 되어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또한 자체 개발한 인사관리프로그램인 ‘EK e-HRM’을 통해 아웃소싱직원 채용부터 퇴사까지 인사관리, 파견근로자의 복리후생 및 경력관리를 하고 있고, 파견 및 콜센터 아웃소싱에 대한 ISO품질인증과 우수인재확보를 위한 온라인 구인, 구직 사이트인 코리아잡(www.koreajob.co.kr)을 운영하고 있다는 점도 경쟁력이다.
노사관리팀 운영에 따른 노무진단 실시로 파견 및 위탁사업장의 집단화 및 단체행동, 다양한 문제의 사전예방을 통해 조직의 안정화에 노력하고 있다.
특히 외부차입금이 없는 우수한 재무구조와 종퇴보험 100% 가입을 통한 기업의 투명성을 가지고 있고, 대표이사 및 임원진의 법규준수 및 사회적 공헌에 대한 의지와 실천도 회사의 건전성을 높이는 효과를 낳고 있다.
■ 기업 성장사
이케이맨파워의 성장사는 크게 4기로 구분 할 수 있다.
▲ 1기:1990년~1997년, 태동기
회사를 설립할 당시 근로자파견이라는 업종자체가 신규업종이었기에 많은 우여곡절이 있던 시기였다. 법 제정 이전의 시기였기에 파견을 보내지 못하는 직종도 없었지만 기준이 없었기에 운영상의 모호한 부분도 많았던 시기였다.
▲ 2기:1997년~2000년, 발전기(도약1기)
파견법이 제정되고 파견을 이용하기 위한 사용상의 제약이 나오게 된 시기였다.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라는 이름으로 제정은 되었지만 실제 운영상에 있어서는 현실과 동떨어진 내용이 많았다. 기업들에서도 불편함을 느끼고 파견업체들도 업무적으로 소모적인 부분이 있었고 법이 의도한 근로자들을 보호하지 못했다. 이 시기는 파견업체의 이미지에서 콜센터 아웃소싱 업체로의 다각화에 성공한 시기로 이케이맨파워의 오늘을 있게 한 중요한 시기였다.
▲ 3기:2000년~2003년, 발전기(도약2기)
KTF, KT포커스, SKT, 대한생명, 한국암웨이, LG카드 CRM센터 등 다양한 업종의 콜센터 아웃소싱에 대한 수행경험을 쌓은 시기로 현재까지도 대부분의 업체는 아웃소싱서비스가 진행되고 있다. 콜센터 아웃소싱과 여러 업종의 일반아웃소싱이 활발해지면서 근로자파견의 수요는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특히 금융권의 어려움으로 금융권 상담직과 채권직의 감소로 인해 전체적인 파견시장의 파이가 줄어 든 상태다. 이케이맨파워의 파견사업본부는 파견인력이 줄어 든 대신 채용대행, 사무아웃소싱, 마케팅 아웃소싱, 유통아웃소싱 등 다양한 영역의 업무 다각화를 통해 토털아웃소싱 전문업체로서의 변신을 모색해 온 시기였다.
이 시기의 중요한 변화중 하나는 고객사에게 차별화 된 수급방법과 적합한 인력의 선발을 위해 인력풀 구축을 위한 코리아잡이라는 대한민국 대표 취업사이트를 재오픈하여 현재까지 운영을 하고 있다. 향후 이케이맨파워의 성장동력 중 한 부분을 차지할 온라인 취업사이트이기도 하다.
▲ 4기:2004년~현재, 성장기
2004년 CTI구축 전문업체인 로커스에서 자본금 50억인 로커스터치링크를 인수하여 좌석수 250석의 콜센터를 확보했으며, 기존의 HR전문기업에서는 수행하지 못한 상담원의 채용, 교육, 관리, 시스템을 활용한 O/B CRM, DB마케팅 등을 통한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으로 혁신을 이룬 시기다.
올해도 하반기 비정규직법 개정에 따른 많은 논란이 예상 되는 등 한 치 앞도 예측하기 힘든 시장상황에서도 아웃소싱 선두기업으로서의 역할과 도약을 위해 이케이맨파워는 또다른 변신을 모색하고 있다.
내부스탭의 학습과 교육을 통한 전문인력양성, 콜센터 ASP전문기업인 터치링크커뮤니케이션의 분사를 통한 경영전문화와 동종업체와의 차별화를 위한 채용프로세스의 전문화 및 교육부문 강화, 내부고객만족을 위한 파견사원 및 위탁사원의 복리후생 강화 등을 진행하고 있다.
아웃소싱산업이 고도화되고 발전할수록 아웃소싱기업들의 역할과 비중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케이맨파워는 현재보다는 미래를 준비하는 기업으로 업계를 리딩해 나간다는 각오로 아웃소싱서비스 고품질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 김동규 대표는…
정도와 원칙에 충실한 ‘뚝심있는 경영자’
사회공헌·수도권 텔레마케팅학과 신설 강한 의지
▲ 프로필
- 한양대학교 행정대학원 졸업 / 박사과정 4학기 수료
- 한양대학교 행정문제연구소 연구원
- 한국인재파견협회 부회장
- 한국컨텍센터협회 이사
- KTF 감사패 3회 수상
- 월드컵조직위원회 공로상 수상
- KTF 우수협력사(최우수업체선정)
- 장애인고용우수사업주인증
- 노동부 근로자파견우수기업인증
- 한국지역사회 교육협의회 등 감사패 다수 수상
이케이맨파워 김동규 대표에 대한 외부의 평가는 ‘학구파 경영자’란 평판이 일반적이지만 그보다는 정도와 원칙에 충실한 ‘뚝심있는 경영자’라는 평이 더 어울린다.
19년 동안 이케이맨파워 대표이사로 HR시장의 모든 변화를 몸으로 체험한 파견업체의 산 증인이기도 한 김대표는 이케이맨파워를 설립하기전 이미 중국과 러시아 등을 무대로 발로 뛰며 이룩한 성과로 매출 600억원에 달하는 중소기업을 일군 전도유망한 기업가였다.
▲ “세상은 꿈을 실현시키는 무대”
김 대표가 사업을 시작한 것은 1980년대 말. 한양대 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 과정을 마칠 무렵, 문호를 개방하기 시작한 공산권 국가의 발전 가능성을 내다보고 무역업에 뛰어들었다.
처음에는 홍콩을 통해 중국에서 감초 등 한약재 원료나 녹용 등을 들여왔다. 한중 국교 수립 이전이었던 당시에는 수입상간의 경쟁이 치열하지 않아 큰 차익을 남길 수 있었다. 특히 판매상을 직접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현지인을 고용해 합당한 가격에 물건을 맞춰 오도록 하는 영업방식이 주효했다.
중국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자 러시아로 눈길을 돌렸다. 싱가포르를 통해 약재를 수입했다. 그러다 무분별한 어획으로 90년대 후반에 이르면 동해에서 대구와 동태가 나지 않을 것이란 신문기사를 보고 미국으로 달려갔다. 미국 업체와 독점 계약을 맺고 명란을 수입하기로 한 것.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고, 국내 소비자들의 기호에 맞도록 하기 위해 산지인 알래스카 알루샨 열도까지 직접 찾아갔다. 부정기로 운항하는 수륙양용기를 타고 들어가다보니 위험천만한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일본인들도 안전 문제로 들어가 사업하기를 꺼리는 곳이었다. 하지만 세계를 무대로 한 무역업에서 그는 거칠 것이 없었다.
그는 이러한 역경 속에서 초기 수년간의 무역사업으로 큰 수익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수익을 밑천 삼아 인력파견과 콜센터 아웃소싱을 주사업으로 하는 이케이맨파워를 설립했다. 이후 정보기술(IT) 사업과 접목을 시도하다 휴대폰 솔루션 개발업체인 클루엠을 설립했다. 클루엠은 별도 IC칩 없이 휴대폰으로 멤버십 카드 등의 포인트를 결제하는 일회용 바코드 무선결제시스템(OTB)에 관한 특허를 가지고 있다.
▲ “이력서를 거꾸로 쓰라”
김 대표는 미국과 무역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미국을 다니면서 인력사업이란 새로운 분야를 알게 됐을 뿐 아니라, ‘신뢰'라는 비즈니스의 기초를 익혔다.
“처음 거래할 때는 ‘물건 떠났으니 돈 보내라'는 식이었죠. 그런데 이게 점점 늦춰지더니 나중에는 부산에 물건이 도착했는데도 크레디트를 3개월을 주더군요. 신뢰가 쌓인 것이죠. 신뢰만 쌓인다면 작은 회사도 발로 뛰어 얼마든지 키울수 있다는 확신을 같게 됐죠”.
젊은 시절 오지도 마다 않고 누볐던 그는 누구보다 젊은 세대에게 할 말이 많다.
김 대표는 “요즘 젊은 사람들은 무조건 대기업만을 선호합니다. 복리후생 좋고, 자기 시간 많고 연봉 높은 회사만 젊은 사람들이 선호하잖아요. 하지만 그런 최고의 회사는 많지 않습니다. 모든 회사가 그렇게 대접하다간 대부분의 회사는 망할 것입니다.
젊은 사람들은 부모와 정부에 의존하지 말고 보다 넓은 시각으로 일자리를 직접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미래를 자신과 회사가 함께 개척해 나아갈 수 있는 그런 직장이 최고의 일자리인 것입니다"라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그는 이력서를 거꾸로 써보라고 말했다. “공무원이라면 차관은 몇 살, 국장은 몇 살, 이런 식으로 기술해보는 거예요. 기업 CEO가 꿈이라도 마찬가지에요. 거꾸로 써보면 지금 위치에서 뭘 해야할지 답이 나옵니다. 미래의 계획을 써보고 실천하려 노력한다면 성공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습니다".
▲ “사회공헌이 나의 꿈이자 비전”
김 대표는 장애인 고용에 적극적이다. 콜센터를 운영하면서 자연스럽게 이들에게 관심을 두게 됐다. 현재 장애인을 위한 포털사이트를 구축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다. 2005년에는 장애인 고용촉진공단에서 장애인고용우수사업체로 선정되기도 했다.
경기도 남양주에서 초중고를 다녔다는 그는 앞으로는 지역사회에서 봉사하는 꿈도 가지고 있다.
“일이급 장애인 30명 정도가 회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 분들은 매 순간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에 행복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들은 정상인보다 더 열정적으로 맡은 직무를 훌륭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며 일자리 제공이라는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김 대표는 현재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양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수도권에 텔레마케팅관련 학과 신설에 대해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상담직이라는 새로운 전문직종이 확대되었고 당분간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는 시점에서 상담직을 지원하는 구직자들의 학력분포를 보면 전문대졸이상의 학력을 갖춘 사람이 상당수임에도 불구하고 이들 대부분은 대학에서 배운 전공과 무관하게 상담직을 지원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이 투자한 비용과 시간을 계산해 보았을 때 사회적 손실 또한 적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이에 김동규 사장은 다양한 업체의 상담원 파견 경험과 콜센터 아웃소싱 경험을 바탕으로 전문화된 인력육성을 통한 산학연계를 모색하고 있다.
김 대표는 파견과 도급 등 아웃소싱서비스 범위가 비정규직 범주에 묶여 곱지 않은 시선으로 비추어지는 것이 안타깝다. 그러나 기업에게는 효율과 생산성을, 구직자에게는 신규 일자리 창출을 통한 기업의 사회적 책무를 다함으로써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진정한 아웃소싱업체로 거듭나기 위한 김 대표의 뚝심 있는 노력과 열정이 식지 않을 것임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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