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은 ‘봉’이 아니다
국민연금은 ‘봉’이 아니다
  • 승인 2004.11.26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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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을 둘러싼 논란이 점입가경이다. 재정경제부는 연기금을 경기를 살리는 데 참여시킨다고 해서 논란의 불을 지피고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은 “하늘이 두 쪽 나더라도 그것만은 안 된다”며 반기를 들어 타오르는 불에 기름을 확 부었다.

국민연금의 운용을 놓고도 대립의 각이 날카롭게 서있다. 정부와 여당은 국민연금의 운용을 독립성과 투명성이 강화된 기구에 맡기자는 안을 정리했으나 김 장관은 “복지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 재경부에는 맡길 수 없다”며 반발해 쉽게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국민연금 보유 주식의 의결권 행사 여부를 놓고 여당·정부와 야당·재계의 줄다리기가 팽팽하다.

그러나 최근의 논란은 본말이 전도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국민연금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최우선적으로 국민적 합의점을 찾아야 할 제도 개선에 대한 논의는 뒤로 쏙 빠져있어서다.

◇김근태 장관의 ‘1인 시위’

최근 논란의 중심에는 김 장관 있다. 김 장관은 지난 19일 복지부 홈페이지에 국민들게 드리는 글을 올리고 “국민 연금 운용은 어떤 경우에도 국민의 심정적 동의를 얻어 집행하겠다”며 정부의 종합투자계획에 정면으로 반발해 파문을 일으켰었다.

김 장관은 자신의 발언에 따른 파장이 예상외로 커지고 해외순방중이 노무현 대통령도 유감의 뜻을 표명했다고 전해지자 지난 23일 국무회의에서 “결과적으로 많은 분들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한발짝 물러서는 듯 했다.

그는 그러나 24일 “국민연금에 대한 관리, 감독을 재경부가 맡아서는 안된다”고 말해 당·정·청의 심기를 다시 돋구었다.

김 장관의 1인 시위는 25일 오전에 열린 백봉 신사상 시상식에서 노대통령을 만나 "결과적으로 무리를 빚게 돼 죄송하다”는 사과로 일단 진정 국면으로 들어선 듯한 모양새를 갖추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일주일 동안이나 일파만파의 파장을 불러온 김장관의 1인 시위가 남긴 상처는 예상외로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가뜩이나 풀기 어려운 문제들을 더 꼬이게 만들어놨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김장관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국민들과 노대통령에게 사과의 뜻을 전했지만 국민연금 관리와 감독을 누가 어떻게 할 것인 지를 놓고는 경제부처와의 틈은 더 벌려놨다.

20년정도후면 1000조원이상으로 불어나게 될 연기금 투자를 좀 더 자유롭게 할 것인가를 놓고는 앙금만 더 쌓아놨다.

노인철 국민연금연구센터소장은 “문제를 풀 때는 간단 명료해야 하는데 쟁점이 본질과는 다르게 전개되다보니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또 “정치적으로만 풀려고 하니 자꾸만 꼬이고 있다”며 국민연금이 정치적 의도와 부처 이기주의에 휘둘리는 현실을 비판했다.

◇의결권 행사 논쟁도 팽팽

꼬인 것은 비단 국민연금 운용 방법 뿐이 아니다.

김 장관의 발언이후 여야는 국민연금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의 의결권을 행사 여부를 놓고 예리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재계는 이 틈을 타 “국민연금 주식의 의결권 행사는 원칙적으로 제한해야 한다”며 “외국자본의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대한 경영권 방어와 투자 수익성 제고가 목적인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연기금의 주식 의결권을 허용해야 한다"며 목청을 높이고 있다.

한나라당도 재계와 입장이 같다. 기금관리기본법 개정안을 발의 한 국회 정무위의 유승민 의원은 “연기금이 민간자본의 경영 자율성을 침해하는 것은 연기금 사회주의에서나 가능한 일”이라며 의결권 제한을 주장했다.

우리당 강봉균 의원은 이에 대해 “연기금의 안정성을 확보하려면 기업경영에 대한 감시는 필수며, 주주 의결권이 감시의 주요 수단”이라며 의결권 행사의 불가피성을 역설했다.

정부 고위관계자도 “의결권을 행사하지 말라면 국민연금은 우선주만 매입하란 말이냐”며 어이없어 하기도 했다.

◇국민연금 개혁 물건너 가나

정치권과 정부가 국민연금의 운용과 보유주식의 의결권 행사 여부를 놓고 티격태격 치열한 논쟁을 벌이는 것은 연금의 장래를 위해 한차례 치러야 할 홍역으로 풀이된다. 단 그 의도가 순수하다는 전제 아래서다.

권문일 덕성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국민연금에 대한 공방은 정치권이나 정책결정자들이 합리적이라는 것을 전제로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아 국민들의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는 듯한 느낌”이라고 아쉬워했다.

또 의도가 순수했더라도 잘못된 게 있다. 정작 시급하게 다뤄져야 할 국민연금 보험료와 급여액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쏙 빠져 `본말이 전도된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정부는 원래 국민연금이 적게 내고 많이 받는 구조로 갈 경우 2047년쯤 고갈될 것을 우려해 보험료율을 2010년 10.38%로 올리는 것을 시작으로 2030년까지 5년마다 1.38%포인트씩 올려 최종 15.9%까지 인상토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한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우리당 유시민 의원 등 19명은 지난달 국민연금 급여 수준은 현행 평균소득액의 60%에서 내년부터 55%, 2008년부터는 50%로 단계적으로 낮추되 보험료율은 올리지 않는 내용을 담은 개정안을 제출한 상태. 정부안에 물을 탄 해법이다.

유시민 의원은 이를 두고 지난달 “(우리당이 제출한)국민연금법 개정안은 미봉책이 맞다”고 인정하기도 했다.

◇ "왝 더 독(Wag The Dog)"

전문가들은 정치권과 정부가 국민연금의 본질을 놔두고 운용방법이나 의결권 행사 여부등 중요도를 따져볼 때 부수적인 문제들이 마치 문제의 전부인양 물고 늘어지는 현상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투다.

일각에서는 "‘물을 탄 개혁안’을 구렁이 담 넘어가 듯 은근 슬쩍 처리하려는 심산”이라는 비판이 흘러나온다. ‘누구나 표에 도움이 되지 않을 개혁안을 끄집어내기 힘들 것’이라는 동정론도 있다.

김진수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국민연금 수술은 뒤로 제쳐두고 주식투자가 되네 안되네 힘겨루기만 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전형적 왝더독(Wag The Dog: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것을 빗댄 말)현상이라는 지적이다.

분명한 것은 국민연금은 눈 앞의 이익에 눈이 먼 정치인들과 우매한 관료들의 ‘봉’이 절대 아니란 점이다. 국민들이 노후를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기에 더없이 소중하고 귀하게 다뤄야 할 금과옥조다.

올해에도 국회의원들과 정부가 연금 수술을 미적거린다면 후세대들의 부담만 높아질 게 확실하다. 한 전문가는 “연금 개혁이 없으면 현세대의 아들 딸과 손자 손녀들이 월급의 40%를 국민연금으로 뜯길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김진수 교수는 “국민들은 공중전의 게임을 보고 싶지 않다”며 “정치권이나 정부나 다 잘못됐다는 점을 인정하고 반성해야 한다”고 대반성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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