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동운동, 방향 돌려야
한국노동운동, 방향 돌려야
  • 승인 2004.11.16 10: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국 간병인 노조에게서 배울 점

<필자 최성애님은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의 연구원입니다. -편집자 주>

지난 10월 22일 민주노총은 <비정규, 이주노동자 조직 - 노조의 새로운 조직화 전략>이라는 주제로 국제연대 활동가 포럼을 개최했다. 20여 명 남짓한 객석 참가자의 초라한 숫자가 비정규, 이주노동자들의 조직화에 대한 일선 노조 조직가들의 무관심을 반영하는 듯하여 시작 전부터 내 마음은 “삐딱”해졌고, 한국의 비정규, 이주노동자에 대한 어떠한 구체적인 “새로운” 조직화 전략도 논의되지 않아 실망감을 더했다.

미조직 노동자들의 조직화에 대해 유일하게 시사적인 내용을 전해준 것은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UCLA) 노동연구교육센터 소장인 켄트 왕(Kent Wong)씨의 발표였다. 그가 언급한 미국의 간병인 노조, 건물청소원 노조 등의 성공적인 조직사례는 여전히 대기업 중심주의, 상대적 고임금의 남성노동자 중심주의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 노동운동이 눈을 크게 뜨고 들여다볼 가치가 있는 사례들이다.

미국 건물청소원 노조(Justice for Janitors)의 결성과정은 우리나라에서도 상영된 <빵과 장미>(Bread and Roses)라는 영화를 통해 관심 있는 사람들에겐 제법 알려져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몇 해 전 “7만여 간병인들의 노조 조직”으로 미국 안팎의 노동운동에 기쁨과 놀라움을 안겨준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간병인 노조를 소개하고자 한다.

특권적 노동자 중심 노조운동의 보수화 속에서

지난 2000년 4월 초, 미국 로스앤젤레스 지역 간병인 7만 4천여 명은 간병인들로서는 미국 최초로 노조를 결성하여 북미서비스노동조합연맹(SEIU)에 가입했다. 이들은 병원이나 여타 요양시설에 고용된 노동자들이 아니라 주로 노인이나 환자가 있는 가정을 직접 찾아가 간호서비스를 제공하는 가정 간병인들(homecare workers)들로서, 대부분이 여성들이며 유색인들이고, 또 상당수는 이주노동자들이었다.

한 도시에서 7만 명이 넘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동종 직업 노동자들이 일거에 노조를 결성한 것은 1941년 미국 포드 자동차회사 노동자들이 대규모로 노조가입을 결정한 이후 60년 만에 이루어진 최대의 조직적 쾌거였다. 더구나, 미국사회에서 가장 천시되는 직업 중 하나로 인식되고, 노동공간이 뿔뿔이 흩어져있어 노동자들 상호간의 일상적 교류가 부재한 외로운 직업이며, 성적ㆍ인종적ㆍ언어적으로 사회적 소수자인 이들 가정 간병인들의 이 같은 대규모 조직화는 미국 노동운동의 질적인 변화를 상징하는 의미 있는 사건이기도 했다.

미국의 노조 조직률이 최고를 기록하던(약 35%) 1950년대와 1960년대는 역설적이게도 미국노조운동이 가장 보수적이던 시기이기도 했다. 2차대전의 최대 전승국인 미국은 자동차 산업 등 중화학 공업을 중심으로 빠른 경제성장을 했고, 그 부산물로서 주로 백인 남성 노동자들로 이루어진 일군의 노동자 집단에게 고임금과 고용안정을 보장할 수 있었다. 미국노총(AFL-CIO)을 비롯한 주류 거대 노조들은 특권적인 지위를 누리던 이들 백인 남성노동자들에 의해 주도되었으며, 노동운동은 이들의 특권을 유지, 확대하기 위한 대 정부, 대 사용자 “로비”활동이 주가 되었다.

시민권 운동이 전 미국을 휩쓸던 60, 70년대에조차 미국의 노동운동은 묵묵한 방관자로, 때로는 시민권운동에 대한 적극적인 반대세력으로 역할을 했다. 사회운동 세력들이 미국의 군사주의를 비판하며 국방비 감축운동을 벌일 때 이들은 “국방비 감축은 군수산업 노동자들의 이익을 해친다”는 이유로 군비축소 반대 입장을 표명하여 “AFL-CIO가 아니라 AFL-CIA로 불려야 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특권적 노동자 중심의 노조운동의 가장 큰 희생자는 바로 그 당사자들이었다. 70, 80년대 미국의 산업구조조정은 미국 제조업의 지형을 뒤흔들었다. 신기술의 발전과 국내외 풍부한 미조직 노동자들의 존재는 상당수 제조업체들로 하여금 값싼 노동력을 찾아 쉽게 공장을 이동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했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기존 산업도시들이 폐허가 됐고 노동자들은 직장을 잃었다. 이 와중에도 소위 ‘협조적 노사관계’ 원칙 하에 기존 조직노동자들의 이해만을 앞세운 노조들은 구조조정의 파도에 근본적으로 대항할 언어도 투쟁도 개발하지 못한 채 ‘누구를 우선 정리 해고할 것인가, 보상금은 얼마로 할 것인가’ 등의 소극적 협상에 치중했다.

서비스 노동에 대한 ‘존엄성(dignity)’ 인정 요구

기존 노조운동으로부터 보호와 관심을 받아오지 못한 미조직 노동자들의 저임금을 기반으로 서비스산업이 급격히 팽창했다. 노동자들은 한편으로는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이 희박한 소수 고임금 기술, 경영, 지식, 금융전문직 노동자군과, 다른 한편으로는 불완전 고용과 열악한 노동조건에 처한 다수의 하위 서비스직종 및 의류, 반도체 등 잔여 제조업 노동자군으로 양극화되었다. 후자의 노동자군의 상당수가 여성, 유색인, 그리고 이주노동자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은 물론이다.

서비스노조연맹(SEIU)이 약 10여 년 전부터 조직의 빠른 확대와 ‘공격적’ 조합정책으로 미국 노조운동의 주요세력으로 부상하게 된 것은 바로 이러한 배경 하에서다. SEIU의 새로운 집행부는 저임금 노동자 및 기타 사회적 소수자로 구성된 노동자들의 조직화가 자본의 무차별한 지배에 저항할 수 있는 중요한 관건임을 인식하고 대대적인 인적, 물적 자원을 이들의 교육과 조직화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SEIU는 하위 서비스직 노동자들의 관심은 단지 저임금을 탈피하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 노동에 대한 ‘존엄성(dignity)’을 인정 받는 데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서비스 노동의 가치를 다양한 방식으로 가시화시키고, 노동과정에서의 비인격적 처우와 요소들을 모니터링하는 등의 활동에 큰 중요성을 두기 시작했다. 이후 ‘DIGNITY’는 SEIU의 조직전략 및 정책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캐치프레이즈가 되었다.

서비스 노동자의 절대다수가 여성이라는 점, 그리고 많은 서비스 직종이 소위 “여성적인 일”의 연장인 성격을 갖는다는 점을 고려할 때, ‘서비스 노동의 존엄성 확보’는 남성중심적인 노동세계에서 늘 평가절하 되어오던 여성노동에 대한 재평가의 의미도 담겨있다.

“가장 주변적인 노동자”들의 12년간의 조직화

로스앤젤레스 가정 간병인들의 조직화는 SEIU가 무려 12년 동안 막대한 인력과, 시간과, 돈을 투자한 끝에 일궈낸 커다란 성과였다. 매년 조직활동가 40여 명을 간병인 조직화 사업에 전담, 배치했다. 노동자들이 한 곳에 모여 일하는 업종이 아니어서 간병인 한 사람 한 사람을 일일이 찾아 다녀야 했다. 간병인으로 등록된 사람들의 명단을 확보하고, 그들의 집이나 혹은 그들이 일하는 환자의 집으로 찾아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노조에 대해 알리고 조직의 필요성에 대해 토론하고 설득했다.

세탁소, 버스정류장, 현금자동출납 부스 등에까지도 찾아 다니며 수소문하고 유인물을 돌렸다. 간병인들 중 상당수가 영어에 서툰 이주노동자들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남미출신 간병인들은 스페인어를 구사하는 조직활동가들이, 중국인 간병인들은 중국어를 하는 조직활동가들이 방문하고 조직했다 (노조결성 이후 매년 개최되는 대의원대회는 약 3천 명의 대의원들이 참석하는데 대회 내내 4개 언어로 통시통역이 제공된다고 한다). 장애인 단체, 노인단체 등을 찾아 다니며 간병인들의 조직화를 지지해줄 것을 호소했고 성과를 얻기도 했다.

“가장 주변적인 노동자”, “가장 조직하기 힘든 노동자”로 여겨지는 간병인들을 조직하기 위한 12년에 걸친 이러한 물적, 인적 투자는 SEIU의 기존 조합원들의 동의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 모든 투자는 기존 조합원들의 조합비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과거 특권적 노동운동에 환멸을 느끼고 등을 돌렸던 진보적 지식인들과 학생들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노동운동을 바라보고 지원하며 취약한 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확산시키는 움직임을 벌이고 있는 것 역시 새롭게 변화하는 노동운동에 대한 사회적 동의를 이끌어내는데 보탬이 되고 있다.

미국의 일부 지식인들은 지난 1997년 <사회정의를 위한 학자, 예술가, 작가들의 모임> (Scholars, Artists, and Writers for Social Justice. 일명 “소시지[SAWSJ]”)를 결정하여 매년 노동대회를 개최하고 있고, 소수이지만 일부 대학생들은 “유니온 썸머 프로그램” (Union Summer. 여름방학 동안 소정의 훈련을 받은 뒤 노조 조직활동가로 일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함으로써 미국판 “노학연대”를 꾀하고 있다.

한국노조, 미조직 노동자 운동에 얼마나 "투자"하나

최근 우리나라 노동운동에서도 비정규직 노동자, 비공식 부문 노동자 등 불안정하고 미조직된 노동자들의 노동문제가 큰 화두로 대두되고 있다. 이들의 노동조건 개선과 조직화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목청 높게 외쳐진다. 그러나 실제로 이를 위한 “투자”는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있을까? 정규직 중심의 기존 노조들이 진정 “투자”할 자세는 되어있을까? 노조 집행부가, 상급단체들이, “투자”의 동의를 얻기 위한 조합원 교육에 어느 정도 열의를 보일까?

혹여 조직화 없이, “투자” 없이, 정부를 향한 “목청 싸움”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닐까? 혹여 비정규ㆍ미조직 노동자의 조직화 전략 역시 ‘대공장 남성 하청노동자’ 우선 전략을 취하려는 것은 아닐까? 청소원 아줌마들, 파출부 아줌마들, 식당 아줌마들, 간병인 아줌마들, 일용직 아줌마들, 가내 하청 아줌마들, 상점 아가씨들, 단란주점 아가씨들. 각종 ‘미조직/비정규 대책위원회’의 “대책”들 안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위치는 어디쯤일까? 여전히 노동운동의 주연은 아래와 같은 모습일까?

“피의 80년 이후, 피 어린 싸움 속에서 여성노동자들의 눈물과 비명만이 있어왔던 노동운동의 현장에 남성노동자들이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푸른 작업복의 억센 팔뚝, 강인한 이마 위에 머리띠를 동여매고 구보하는 사진으로 이 땅의 남성노동자들은 역사의 무대에 자신의 등장을 알렸다. 군대와 같은 조직력을 과시하는 파업농성이 사흘째 계속되자 회사와 정권은 당황하기 시작했고….” (방현석, 1999, “대우자동차 파업,” <아름다운 저항: 방현석의 노동운동사 산책>, 기획: 민주노총 기관지 『노동과 세계』, pp. 79-80.)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