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면서 안정과 개혁을 내세운 노무현 대통령의 2기 국정운영 구상은 시작부터 차질을 빚게 됐다.
사표까지 제출하며 장관제청권 요청을 끝내 거절한 고건 국무총리에 대해 청와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
고 있다.
청와대는 그동안 고 총리가 결국에는 제청권을 행사하지 않겠느냐며 자신해왔다. 한마디로 사태를 쉽게 생
각하면서 고 총리가 이처럼 완강할 지는 전혀 예측조차 하지 못하다 허를 찔린 셈이다.
청와대를 더욱 곤혹스럽게 만드는 것은 이번 사태로 인한 부담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고스란히 향할 수 밖
에 없다는 점이다.
고 총리의 의도가 정확히 어디에 있든지 간에 모양새가 노무현 대통령과 떠나는 총리간의 정면갈등으로 비
쳐지면서 노 대통령에게는 적잖은 흠집이 아닐 수 없다.
이 때문에 청와대 내 일부에서는 처음부터 노 대통령이 직접 나서 고건 총리와 조율을 거쳤어야만 했던 것
아니냐는 뒤늦은 반성론도 나오고 있다.
盧-高 정면갈등, 대통령에게 적잖은 흠집
김우식 청와대 비서실장이 세 차례나 찾아가 요청했는데도 끝내 고건 총리가 각료 제청권 행사를 고사한
배경과 관련해 김덕봉 총리 공보수석은 "고 총리의 결정에 어떤 의도나 정치적 배경이 있는게 아니
다"며 "순수하게 받아 들여 달라"고 당부했다.
다시 말해 "물러나는 총리가 신임 장관을 임명제청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고 총리의 제청권 요청 고
사이유를 액면 그대로 받아 들여 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이면의 배경을 놓고 청와대와 총리실 안팎에서는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
우선은 참여정부가 내세운 책임총리제의 정신에 따라 헌법상의 권한을 염두에 두고 대응했다는 분석이 나
오고 있다.
총리실 관계자는 "고건 총리는 문서로 각료제청권을 행사하는 등 나름대로 헌법이 보장한 총리의 권한을
찾으려고 노력했는데 이를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는 요구를 받아 들이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헌법이 보장한 총리의 권한 찾으려 한 것
청와대측과의 갈등설도 나오고 있다. 고 총리가 수십년 동안의 공직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짜여진 각본
에 따른 거수기 역을 정면으로 거부한 것 이라는 분석이다.
고 총리는 특히 조기 개각이 뚜렷한 이유없이 단지 여권 내 차기 대권주자들의 경력 관리용으로 비쳐진데
대해서도 수긍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시각은 한 발 더 나가서 고 총리가 청와대쪽에 서운한게 많은 것 아니냐며 본격적인 갈등설을 제기
하고 있다.
사의를 표명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헌법상 제청권자인 자신에게 청와대가 어떤 상의나 통보도 없이 언론을
통해 조기개각설을 흘리며 우회적으로 압력을 행사함으로써 고 총리를 적지 않게 자극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고 총리의 이번 행보를 정치적 입지 굳히기라기보다는 장기적인 포석으로 보는 해석도
흘러 나오고 있다.
차기 대권주자들 경력 관리용 개각 수긍할 수 없어
고건 국무총리의 장관제청권 고사로 조기개각이 불가능으로 굳어지면서 노 대통령의 직무복귀 후 첫 개각
은 총리 후보자에 대한 국회인준절차가 마무리되는 다음달 하순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김우식 비서실장은 지난 23일 "고 총리가 제청권 행사를 하지 않을 경우 개각은 절차에 따라 늦어지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도 25일 청와대에서 열리는 국무회의에서 "노 대통령과 고 총리의 정례회동이 예정
돼 있지만 제청권 문제는 더 이상 거론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사실상 조기개각을 포기했음을 시사했다.
특히 이날 회동에서는 고 총리의 사표를 노 대통령이 수리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사실상 총리 후보자로 내정된 김혁규 전 경남지사에 대한 야당의 반발이 거세기 때문에 개각은 더
늦어질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여권 내부에서 "김 전 지사의 총리 기용을 지금은 재고해 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조심스런 목소
리가 흘러나오는 점도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할 부분이다.
개각이 늦어지면서 그 폭과 대상도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해 정찬용 청와대 인사수석은 "개각시기가 늦춰지면 개각 대상을 3개 부처로 못박을 수는 없
다"며 개각 폭이 커질 수 있음을 내비쳤다.
조기개각 물 건너가, 다음달 하순 이후 가능
이에 따라 탄핵사태에서 복귀한 노 대통령의 야심찬 2기 국정운영도 처음부터 삐걱거릴 수 밖에 없게 됐다.
개각이 다음달 하순으로 늦춰질 수 밖에 없게 됨에 따라 이번 조기개각 방침에서 대상이 된 통일, 보건복
지, 문화관광부 등은 앞으로 한 달 동안 사실상 업무정지 상태가 불가피해졌다.
이 때문에 노 대통령이 탄핵에서 복귀한 뒤 내세운 안정적인 국정운영은 일단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특히 청와대는 6월 개각 폭이 지금보다 더 커질 수 있음을 내비치면서 개각에 대한 동요는 다른 부처로까
지 퍼지고 있다.
여기에다 개각 지연은 통일부 장관을 둘러싸고 점차 노골화되고 있는 정동영, 김근태 두 여권의 차기대권
주자 간의 갈등을 여당 분열로 심화시킬 가능성마저 낳고 있다.
개각 대상 한 달 동안 사실상 업무정지
이번 고건 총리의 각료임명 제청권 고사 파동은 청와대의 '원칙에서 벗어난 결과'였다. 다시 말해 노 대통
령과 청와대가 자초한 면이 없지 않다.
우선 당초 다음달 하순으로 예정했던 개각 일정을 조기개각으로 급선회한데 대해 청와대는 아무런 설명도
하지 못하고 있다.
정찬용 인사수석은 "인사사유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수석은 "타당한 이유가 있겠지"라는 말이 고
작이었다. 이 때문에 차기 대권주자들을 위한 개각용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또 청와대는 이번 조기개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인선추천,심사, 검증이라는 절차를 제대로 거치
지 않아 참여정부가 자랑해 시스템에 의한 인사원칙을 스스로 무너뜨렸다는 비판도 면하기 어렵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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