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 없인 특허도 빈껍데기
표준 없인 특허도 빈껍데기
  • 승인 2000.12.20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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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버스카드는 지하철에서도 사용이 가능해졌다. 수년 동안
시민들이 수없이 민원을 제기해 교통카드로 통합됐기 때문이다. 그러
나 아직도 불편은 많다.

대구의 교통카드는 서울에서 무용지물이고 신용카드와 교통카드를 결
합시켰다는 "하이브리드 카드" 도 지방에서는 소용없다.

중앙정부.지방자치단체.기업별로 "표준화" 나 "국민들의 편의" 는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의 편의에 따라 마구잡이로 만들어낸 결과다.

수질 측정도 KS규격은 국제표준화기구(ISO) 기준에 맞춰 1백28개 항
목에 걸친 분석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정작 수질오염 조사 때 KS
마크는 아무 효력이 없다.

환경부 고시에 따른 별도의 검사를 통과해야 한다. 그런데 환경부의
수질오염공정법은 불과 51개 항목만 조사하도록 돼있고 국제규격에
도 미달한다는 사실이다.

표준화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과 통합노력이 부족한 것은 민간기업도
마찬가지다.

속옷의 경우 가슴둘레를 통해 "95, 1백, 1백5…" 치수를 사용하고
양복의 경우 어깨너비.허리둘레.상체길이 등을 나타내는 "577,
688…" 치수를 쓰지만 업체별로 그 크기가 서로 달라 소비자를 헷갈
리게 할 뿐 아니라 인터넷 쇼핑이나 TV홈쇼핑에도 장애가 되고 있다.

문제는 이같은 부분이 단지 조금 불편한 차원을 넘어 국가적 예산낭비
와 우리나라 제품의 국제경쟁력 감소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지금은 표준화의 단골 사례가 된 "서울지하철과 국철간의 서로 다른
전류방식" 의 경우도 남태령고개에서 객실 전등이 잠시 꺼지는 차원
에 그치지 않는다.

전동차 한대마다 교류를 직류로 바꿔주는 장치(1억5천만원 상당)를
추가로 설치함으로써 이미 수백억원의 예산을 낭비한 것이다.

국제무대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ISO는 "특허나 기술보다 표준이
국제경쟁에 더 큰 무기" 임을 간파한 선진국에 의해 이미 선점된 상
태다.

미국.일본.유럽연합(EU) 등은 ISO 산하 7백59개 기술위원회의 대부
분에 가입해 있고 특히 결정권한을 가진 간사국으로 활동하고 있다.

1980년대 초 유럽과 연합해 국제표준으로 채택된 마쓰시타의 VHS방
식 VCR가 기술적 우위에 있던 소니의 베타(β)방식을 눌렀던 것이
나,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4㎜ 캠코더가 국제표준화에 실패
해 사장된 것은 ISO의 위력과 중요성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남북한 관계도 비슷한 처지다. 최근 복원공사 중인 경원선의 경우도
철로 비용보다 서로 다른 제어시스템과 연결장치를 통합하는데 더 큰
비용이 예상된다.

컴퓨터 자판의 배열이나 철근의 길이.굵기도 다르고, 심지어 국어사
전의 가나다 순서에도 차이가 있다.

남북한간 표준화 협력이 빨리 이뤄지지 않을 경우 통일비용 중 15%
를 차지할 것으로 보이는 표준화비용(31조원.산자부 추정)은 날이 갈
수록 더욱 늘어나게 된다.

뒤늦게나마 정부가 범정부 차원에서 표준화 계획을 마련한 것은 다행
이지만 아직 계획 단계인 만큼 빈틈없는 실행을 지켜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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