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냥, 아주 특별한 사냥
1941년 어느날, 조지 드 메스트랄은 아일랜드산 포인터와 함께 스위스
의 유라 산에서 사냥을 하고 있었다. 그는 그날 내내 사냥개와 바지
에 붙은 우엉을 떼어내느라 고생해야 했다. 하지만 드 메스트랄은 모
직 의류나 동물의 털에서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이 식물의 끈기에 놀
랐다. 그날 저녁 이 스위스인 엔지니어는 현미경으로 그 식물을 관찰
하다 또 한번 놀랐다. 표면에 마치 손과 같은 작은 갈고리가 수도 없
이 나있는 것이다. `이 식물을 모방해보면 지퍼나 단추를 대신할 만
한 잠금쇠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는 개발에 성공하자 발명품에다 역사에 길이 남을 이름을 붙여 주었
다. 프랑스말 벨루(velour, 벨벳 천)와 크로쉐(crochet, 고리)의 합성
어인 벨크로(Vecro)라고 말이다.
* 발명은 미친 짓
드 메스트랄 가라사대 "발명가란 간단히 말해, 출중한 아이디어와 번
뜩이는 영감을 가진 정신병자"다. 그는 현미경 속에서 찍찍이를 만들
겠다던 8년간의 `미친 짓"에 눈부신 서광이 비치는 것을 보았다. 1952
년, 그는 너무나 확신에 찬 나머지 엔지니어 일까지 때려치웠다. 그리
고는 스위스의 은행가를 구워삶아 빌린 15만 달러로 1년 전에 특허를
따낸 벨크로의 실용화에 몰두했다.
그는 돈의 일부를 들여, 프랑스의 섬유 중심지 리옹에 가서는 어떤 교
수와 공동으로 연구를 했다. 그들은 합성섬유 나일론으로 실험해 보았
다. 그러나 나일론은 너무나 질겨서 곤란하기 짝이 없었다. 재료가 그
렇게 질겨서는 찍찍이에 쓸만한 갈고리를 만들어낼 수 없었던 것이
다.
* 아이디어 맨의 눈에는 아이디어만 보인다.
나이 마흔 넷에, 메스트랄은 막다른 골목에 몰려 있었다. 재정은 파산
지경에 이르렀고 좌절감도 이만저만한게 아니었다. 주위의 사람들은
나일론 문제를 절대 해결할 수 없을 거라고 장담했다. 하지만 그는 다
시 산으로 돌아갔다. "내 나일론에서 찍찍이를 뽑아낼 기계를 만들 때
까지는 결코 돌아오지 않으리라!”
그는 매일같이 동틀녘에 일어나 그 문제를 골똘히 생각했다. 하지만
해결책은 떠오르지 않았다.결국, 그는 영감을 얻기 위하여 알프스의
작은 도피처를 벗어나 인근의 마을로 갔다. 그런데 어떤 마을의 이발
소에서 영감을 얻었다. 깎고 밀고 깎고 미는 이발사의 동작을 보니 뭔
가가 보였다. ‘찾았다. 드디어 찾아냈다!’ 벨크로 사업은 다시 시작
됐다.
1950년대 중반, 드 메스트랄은 스위스에서 찍찍이 원단 (hook-and-
loop fabric)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는 미국과 유럽의 유명 기성복
업체가 쇄도할거라 기대하면서, 미국과 캐나다의 회사에 특허 사용을
허가했다. 제품의 용도도 여러 가지로 미리 생각해 두었다. 지퍼, 단
추, 끈의 대용품이 될 수 있고 관절염에 걸린 노인들이나 걸음걸이가
서툰 어린아이도 쉽게옷을 입고 벗을 수 있을 것이다 등등.
하지만 이번에는 디자인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 벨크로는 마치 쓰다
남은 싸구려 천조각으로 만든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1960년
대 초반 벨크로가 처음으로 시장에 출시됐을 때, 그것은 고급 의류와
는 별달리 인연을 맺지 못했다. 고급 구두의 끈도, 샤넬 의류의 단추
도, 기성복 바지나 치마 등의 지퍼도 대체하지 못한 것이다.
* 달이 높다고 한들
의류업체들은 처음에는 찍찍이 벨크로에서 별다른 가능성을 찾지 못했
다. 그저 못생기고 쓸모없다고 퇴짜만 놨다. 덕분에 벨크로의 발명가
는, 의류 시장이 스타일이라는 변덕스러운 독재자의 손아귀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미국 과학계는 그의 발명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우주항공
산업의 종사자들은 찍찍이 테이프가 혹시나 덩치 큰 우주복을 입고 벗
은 데 이상적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불행히도, 은빛 우주
복에 시커먼 벨크로를 붙여놓고 보니 보기 흉해서 쓰기 곤란하다는 인
상만 더 강해져버렸다. 아동복 업체와 스포츠의류 업체만이, 무중력
상태의 우주선에서 벨크로로 음식물 주머니를 벽에 붙이고 비행사가
똑바로 설 수 있게 하는 것을 보고는, 커다란 가능성을 인정해 줄 뿐
이었다.
* 발명의 완성은 소비자의 창조적 사용
스키 선수들 또한 우주비행사들처럼 덩치 큰 옷 때문에 움직이기가 불
편했다. 스포츠의류 없체는 스키복에 벨크로를 달면 아주 편해진다는
것을 알게 됐다. 스쿠버다이빙용 의류와 잠수복을 만드는 업체도 그
뒤를 따랐다. 벨크로 찍찍이를 단 어린이용 지갑은 대성공을 거두었
다. 찍찍이가 달린 책가방이 연이어 생산되었다. 부모님도 아이들도,
쓰기 편하고 독창적인 이 놀라운 녀석을 너무나 좋아하게 됐다. 드 메
스트랄의 예언대로, 벨크로는 지퍼, 단추, 레이스, 버클 등의 완벽한
대용품이 되었다. 벨크로는 시계 줄, 수술 가운, 파카, 혈압 측정기,
어린이용 안전 다트 등 갖가지 용도에 창의적으로 쓰였다.
1978년, 드 메스트랄은 시효가 만료돼서 특허권을 상실했다. 그리고
시장에는 대만과 한국의 저가 유사품이 벌람하기 시작했다. 벨크로로
사는 상표권을 지키기 위해 전회사가 달라붙어 싸워야만 했다. 드 메
스트랄은 발명가에게 평생 특허권을 보장하도록 촉구하는 캠페인을 벌
이기도 했다.
♧ 벨크로 사 직원들은 “벨크로”라는 단어를 클리넥스(Kleenex)나
밴드-에이드(Band-Aid) 같이 보통명사처럼 써서는 안된다 그들은 “떼
고 붙이는 잠금쇠(hook-and-loop-fastener, 찍찍이)”나 “훅 테이
프” 혹은 “룹 테이프” 이란 말을 사용하도록 교육받는다.
* 사냥은 계속되고
그래도 조지 드 메스트랄은 로열티로 백만장자가 됐다. 그는 스위스
에 있는 18세기의 궁전에서 살았다. 뉴 햄프셔에 있는 벨크로 미국 법
인을 찾았을 때, 드 메스트랄은 중역들에게 다음과 같이 충고했다.
“만약 직원들이 2주 정도 휴가를 얻어 사냥을 가겠다고 하면 보내주
시요.” 하기는, 벨크로도 사냥 덕분에 발명할 수 있었으니까.
( 자료원: 앨린프리먼&보브골든, 메타브랜딩 역, ‘아차, 나는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세종서적, pp.97~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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