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나, 노사 갈등의 후유증으로 채산성이 악화되면서 경영권이 1997년
에는 대우그룹으로, 1999년에는 일본 아사히글라스로 넘어가는 우여곡
절을 겪었다.
이후 노사 협력의 중요성을 새삼 인식한 노사는 일치단결하여, 인력
구조조정보다는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이라는 제품 구조조정을 통해 건
실한 경영 기반을 마련했다.
한국전기초자는 1997년 노사 문제를 안일하게 생각한 경영진과 집단이
기주의로 뭉친 노조가 충돌, 77일간의 장기 파업을 맞고 말았다. 이
로 인해 회사는 막대한 손실을 입고, 경영권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
다.
세계적인 기업진단 기관에서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다"고 진단할 만
큼 당시 상황은 나빴다. 주가는 폭락, 휴지조각으로 변했다.
다행히 늦게나마 이 회사 노사는 손을 잡았다. "변화하는 조직만이 살
아남는다"며 최고 경영자가 앞에 서서 변화를 이끌었다. 금연·금주
는 물론 매일 새벽 정시에 출근하여 근로자를 독려했다. 근로자들
도 "남이 잠잘 때 깨어 있고, 남이 놀 때, 일하고, 남이 쉴 때 공부하
자"며 변화에 적극 동참했다.
변화에 대한 근로자의 열의는 뜨거웠다. 노조는 과거의 비생산적이고
대립적인 협상 관행을 벗어버렸다. 1998년부터는 임금협상을 한 차례
의 교섭으로 끝내는 전통을 만들기 시작했다.
작업장에는 혁신의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근로자들은 하계 휴가와 시
간외 수당을 반납하며, "일 더하기 운동"을 전개했다. "1시간 근무,
30분 휴식"이라는 종전 관행에서 벗어나 "2시간 근무, 10분 휴식"이라
는 새로운 근무문화를 정착시켰다. 그 결과 종전 3일이나 걸리던 형
교환 작업이 단 2시간만에 이루어졌다. 수율은 90%까지 올라갔고, 클
레임은 0%로 떨어졌다.
그후 3년. 마침내 이 회사는 2000년 상장기업중 영업이익률 1위라는
경이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1,114%에 달했던 부채비율을 37%로 낮췄
다. 매출은 2,300억원에서 매년 가파르게 늘어, 7,100억원에 이르렀
다.
물론 그 과정에 인위적인 인력 구조조정은 없었다. 대신 생각을 바꾸
는 "마음의 구조조정"을 적극 추진했다. "생산은 두배로 늘리고, 비용
은 절반으로 줄인다"는 각오 아래 제품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데 주력
했다.
덕분에 최근 이 회사 주가는 90,000원대를 돌파, 새로운 블루칩으로
주목받고 있다. 근로자들이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생각을 키우는 "마음
의 구조조정"에 성공하면서 미래 가치가 큰 기업으로 평가받은 것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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